
2025년은 케이블TV가 국내에 도입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이는 국내에 유료방송이 도입된 지 30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케이블TV의 성장은 국내 방송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해 왔다. 케이블TV가 도입되면서 난시청으로 인해 충분한 광고 커버리지를 확보하지 못했던 지상파도 같이 성장했고, 유료방송 채널이 도입되면서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상파만이 존재하던 시절 대한민국 방송은 산업이 아니라 공적영역이었다. 케이블TV의 출범은 미디어 강국 대한민국 방송산업의 출발점이었다.
유료방송 사업자로서 케이블TV가 갖는 특성은 지역성을 구현하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매체라는 것이다. 케이블TV는 지역자치의 흐름 속에서 지역채널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등 지역 민주주의 확대와 함께 성장한 매체다. 케이블TV는 지역 독점사업자였고, 이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역 독점이라는 케이블TV가 가진 면허상의 특성은 케이블TV가 많은 부담을 떠안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배경이 되었다.
이제 케이블TV는 더 이상 독점사업자가 아니다. 케이블TV는 유료방송 중에서도 경쟁력 측면에서 열위에 놓여 있으며, 방송 자체가 산업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했고, 동영상 시장은 디지털 미디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케이블TV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료방송 플랫폼 중 가장 많은 책무를 부여받고 있고, 매우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TV는 방송사업 부문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블TV는 매년 방송매출의 7% 수준인 1200억원 이상을 지역채널에 투자하고 있다. 케이블TV의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 케이블TV가 지역성을 구현해야 하는 매체라면 공적인 매체의 성격에 부합하는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그에 따른 공적 지원을 해야 한다. 케이블TV를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유료방송 사업자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면 지역과 관련된 의무는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낡은 규제체계는 케이블TV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혁신을 시도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 소멸은 전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어젠다 중 하나다. 케이블TV는 선거 방송 등 지역매체의 위기 속에서 지역성을 구현하는 최후의 보루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케이블TV가 적용받고 있는 채널 규제, 편성 규제, 요금 규제 등이 앞으로도 적용된다면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자연스럽게 고사할 수밖에 없다. 케이블TV는 정부가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매체다. 케이블TV가 급격히 쇠락하는 것은 거시적인 매체 정책 관점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성을 구현할 매체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부합하지 않는 낡은 규제는 조속히 개선될 필요가 있다.
케이블TV는 여러 가지 제약에도 지역채널에 대한 투자 등 수익 악화로 인해 이제 지역성 구현을 위한 투자를 하기에 한계를 맞이한 상황이다. 케이블TV가 앞으로도 지역 매체로서 역할을 구현해야 한다면 부담은 낮춰 주고 지원은 강화해야 한다. 케이블TV가 지역 매체로서 특화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등을 통해 법적 지위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또, 방송 부문에서 적자를 내고 있는 케이블TV가 납부하고 있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은 감경해 줄 필요가 있다. 오히려 기금 지원을 통해 케이블TV가 수행하고 있는 지역성 관련 의무를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 지역 매체에 특화된 지원 정책을 마련하고 그 틀 속에서 케이블TV를 지원해 주는 방안도 고민해 봐야 한다.
케이블TV 도입 30주년을 맞이한 2025년의 화두는 안타깝게도 '위기'다.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은 사업자들이지만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위기 극복은 난망한 일이다. 케이블TV는 정부에 의해서 출범된 '사회적 제도'이기 때문이다. 2025년이 총체적 난국을 맞이한 케이블TV가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nch020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