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법치주의가 약화되는 건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지속된다면 주가의 장기 침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치가 주가 상승의 필요조건임은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주식을 사는 건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내 돈을 맡기는 행위다. 내가 맡긴 돈으로 기업 경영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이익이 생겼을 때 내 몫을 공정하게 계산해서 돌려주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주저 없이 주식을 사는 것은 혹시라도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법과 제도가 이를 바로잡아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믿음이 약해지면 주식 사기를 꺼리게 될 것이고 주가는 떨어질 것이다.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정의와 신뢰가 없이는 시장이 작동할 수 없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동종업계 해외 기업 주가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를 없애는 것이 큰 과제로 여겨져왔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립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더 큰 요인은 한국의 법과 제도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치지 못한다는 우려다. 그런 만큼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부동산 집중 현상은 동전의 양면이다. 부동산 집중 현상은 타인에게 돈을 맡기는 증권 투자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재산인 부동산을 사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렇기에 법과 제도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도달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부동산 집중 현상이 함께 없어질 것이라 기대된다.
반면 미국의 증권 가격은 한국과 반대로 프리미엄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법과 제도가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1970년대 프랑스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미국 자산이 가진 프리미엄을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이라고 부른 바 있지만 미국 제도의 우월성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꼭 과도하다고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법원과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 사법부가 법의 최종 수호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법치주의 약화와 주가 장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 브루스 카스만이 이런 가능성을 지적한 것에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혼란은 한국에는 기회일 수도 있었다. 한국의 법과 제도가 선진국보다 못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역시 법치 약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국회·행정부·법원이 법을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미국 주식을 안 사고, 한국 주식도 안 사면 그만일까? 그렇지 않다. 법치의 약화는 증권이 아닌 다른 자산의 가격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부동산이 자산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도 부동산 소유자의 이익이 법과 제도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불분명해지면 부동산 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모든 투자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김대환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