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전까지 헌법재판소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헌법재판소가 지구온난화가 일으킨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2024년 8월 29일에 매우 중요한 판결을 내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법률의 조항이 헌법을 위반하고 있는지를 헌법재판소가 판결해 달라고 소송이 제기된 법은 <탄소중립기본법>으로서 2021년 9월에 제정되었다. 이 판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리기후협약부터 설명해야 한다.
2015년의 파리기후협약은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서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전 지구적 합의안으로서 195개 나라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이 협약에 따라 세계 여러 나라들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또는 탄소 제로라고도 말함)을 달성해야 하며 각 나라들은 자체적으로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년 주기로 제출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12월에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하였다.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는 국가의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규정하는 조항인데, 제1항에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인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에서 2031년부터 2050년까지 20년 동안의 감축목표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 기후행동' 소속 19명은 정부가 2050년까지 20년 동안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헌법을 위반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단체는 “탄소중립기본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소극적이며 이러한 감축목표로는 청소년들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ㆍ환경권ㆍ평등권ㆍ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보장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인 이 기후 소송에서 청소년들의 주장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정부에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정부에서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만들지 않았다. 2030년까지는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목표를 설정했지만, 그 후 20년 동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현재 세대를 위한 경제 발전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환경을 악화시킨다. 그처럼 악화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미래 세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헌법 제35조에서 명시한 모든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하고 있다.
헌법 제35조 제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이 소송의 내용을 더 줄여서 말하면, 현재 세대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미래 세대가 살아가야 하는 환경을 오염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충돌이다.
2021년 10월에는 같은 문제 의식으로 시민 단체와 정당도 두 번째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22년 6월에는 세계 처음으로 태아 1명이 포함된 아기와 어린이 62명이 세 번째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아기 기후 소송단’으로 알려진 원고들은 2017년 이후 태어난 5살 이하 아기들 40명과 어린이 22명으로 구성되었다.
헌법소원 청구인 가운데 가장 어린아이는 임신 20주 된 태아 ‘딱따구리’(태명)다. 엄마 이동현(39살) 씨는 한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배를 감싸며 말했다.
“지금도 태동을 느끼고 있어요. 딱따구리가 딸꾹질하는 걸 느끼는데, 양수를 삼켰다가 뱉었다가 하면서 호흡을 연습하는 거래요. 우리 아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숨을 쉰 적이 없어요. 세상에 탄소 1g도 배출한 적이 없죠.”
또 다른 청구인 한제아(10살) 어린이가 말했다.
“어른들은 우리들의 미래와 상관이 없습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진 미래에 어른들은 없을 거고, 우리는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 기후 소송단의 법률 대리인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맡았다. 이번 소송을 대리하는 김영희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기후 위기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불편과 위험은 미래 세대가 떠안는다. 이런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위헌’이 아닐까?”
2023년 7월 환경단체 회원 등 시민 51명이 네 번째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비슷한 내용의 4가지 소송을 하나로 병합해 2024년 4월과 5월에 두 차례 공개 변론을 진행하였다. 피청구인인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은 기존 목표를 대폭 상향 조정한 것이며,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 그리고 주요 선진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경제계와 산업계에서 느낄 부담이 크다고 반박했다.
어린이들까지 합세한 기후 위기 소송이 제기된 뒤 4년 만인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책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판결했다. 헌재는 결정문의 '심사 기준'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불충분하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이 가중된다. 이것은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의 중요한 특성이다.“
헌법재판소는 아이들의 소송 참여를 이렇게 평가했다. "미래 세대일수록 민주적 정치 과정에 대한 참여에 제약이 있으므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입법 의무 이행에 대해서는 사법적 심사의 강도가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헌재의 판결에 따라 국회에서는 2026년 2월까지 해당 법 조항을 개정해야 하고 정부에서는 2031년 이후의 기간에 대해서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청구인과 환경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서 “기후위기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의 기후 소송 판결은 경제를 중시하는 현재 세대와 환경을 중시하는 미래 세대의 갈등에서 재판관들이 미래세대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 판결은 네덜란드, 독일, 아일랜드, 유럽 인권재판소 등에서 제기된 선진국의 기후 소송에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과 일치된다. 또한 이 판결은 아시아에서는 첫 판결로서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의 기후 소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로부터 빌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