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우리나라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21대 국회에서 총 7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모두 자동 폐기되는 난항을 겪었다. 22대 국회에서는 5개 법안이 다시 발의돼 마침내 통과되며, 오랜 법제화 논의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과정에서 법률 제정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여론이 형성될 정도로 국가적 관심사였다. 이 법안의 통과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 정책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는 전환점이지만, 핵심 과제는 부지 선정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다.
특별법이 마련되면서 정책의 틀은 갖춰졌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실행을 위한 준비가 중요하다.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특별법 통과를 환영하면서도, 과거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겪었던 지역사회의 강한 반발이 이번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당시 중저준위 방폐장과 함께 고준위 방폐장도 추진되었으나 실패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는 아직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공식적으로 검토한 적이 없다. 1980년대 중반부터 추진된 부지 선정사업은 '중저준위 방폐장과 고준위 방폐물 중간저장시설 확보'를 목표로 진행되었으나,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결국 중저준위 방폐장만을 우선 추진하는 것으로 정책이 변경된 것이다. 반면, 고준위 방폐물 관리 정책은 2013년 공론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으며, 2016년 발표된 '제1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서 하나의 부지에 중간저장시설과 처분시설을 함께 건설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즉, 과거 중저준위 방폐장 추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과거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과정에 관여했던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당시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부지 선정과 지역 지원을 명확히 규정한 법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지 선정 방식도 단계적 조사, 특정 지역 지정, 유치 공모 방식이 뒤섞이며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업 수행기관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한국전력공사를 거쳐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변경되는 등 사업추진의 일관성이 부족했다. 한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위원회'를 구성하고 관계부처 합동 기획단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성과를 얻지 못했다. 감사원에서도 당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향후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에 앞서 법제화를 권고한 바 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막기 위해, 이번 특별법에서는 부지 선정의 민주적 절차, 지역지원사업, 정부 전담조직 및 관리사업자까지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과거처럼 정책이 흔들리거나 사업 추진의 일관성이 흐트러질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부지 선정 절차가 시작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지역 중에서만 공모가 가능하며, 지방자치단체장은 지역사회의 동의 없이는 유치 신청을 할 수 없다. 또, 직접적인 지질 조사 및 부지 적합성 평가를 거친 후에도, 최종 처분장 확정 단계에서는 주민 찬반 투표를 거치도록 규정해, 지역사회의 의사가 두 차례 반영된다. 즉,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지를 정할 수 없으며, 지역사회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적으로도 40년 넘게 해결하지 못했던 고준위 방폐장 부지 문제가 하나둘 해결되고 있다.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심층처분장을 완공하고, 내년부터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스웨덴과 프랑스 역시 이를 뒤따르고 있다. 심층처분장의 기술적 안전성 문제는 비교적 해결된 반면, 사회적 신뢰 형성이 핵심 과제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다. 원전 이용 세계 5위권인 우리나라 역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제 모든 이해관계자가 문제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해결책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13년 내 부지를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신뢰 구축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그 과정 또한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경수 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장 kskim@iksn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