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골프장 완전정복
이바라키현의 그랜드 PGM 코스인 세고비아 인 지요다에서 라운드할 때다. 카트에 달린 네비게이션 화면 페어웨이 위에 커다란 화살표가 있었다. 공략 방향을 표시하는 건가 했다.
그러나 이전 다른 홀에서는 그런 화살표가 없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가 보니 화살표처럼 생긴 벙커였다. 길이는 30~40m에 너비는 5m 정도 돼 보였다. 볼이 화살표 끝에 모여 상당히 어려웠다. 나도 이 벙커에 빠져 보기를 했다.
골프장이 예사롭지 않았다. 8번 홀 벙커들은 꽃잎, 열쇠, 깃발처럼 생겼다. 기하학적으로 생긴 벙커들을 관리하느라 그린키퍼가 고되겠다 생각되면서도 매우 재미있었다. 함께 라운드한 GT 투어 이지훈 이사는 “이바라키의 그랜드PGM 골프장 중에서도 손님들의 평가가 가장 좋은 코스”라고 했다.
라운드 후 코스 설계자가 누구인가 찾아보니 그럴 만했다. 골프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전위적 설계자인 데스먼드 뮤어헤드였다. 그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 괴팍한 사람이 일본까지 가서 그것도 10개나 되는 코스를 남긴 건 처음 알게 됐다.
1980년대 버블 시기 일본은 이 뮤어헤드의 실험정신까지도 살 정도로 여유가 많았다. 뮤어헤드의 말기 대표작들이 일본에 있다.
1980년대 후반 런던이나 파리 같은 유럽 도시 박물관이나 미술관엔 일본 여성이 태반이었다. 일본 경제가 워낙 활황이어서 고졸 여성이 6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 달 유럽여행을 할 수 있었다. 파리에 가서 그림도 보고 명품을 쇼핑했다. 80년대 전 세계 시총 1위는 일본 통신회사인 NTT였다. 50위 이내 33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었다.
일본 골프장은 화려했던 일본 버블 경제의 상징이다. 클럽하우스는 박물관 같고, 유럽의 성 같고, 궁전 같다. 버블시대 골프장들은 사치스러움은 물론 참신성으로도 경쟁을 했다. 골프코스와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클럽하우스도 더러 보였다, 규슈 오이타현의 퍼시픽 블루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는 145m다. 건물 내 이동 거리가 너무 길어 직원들의 이직이 잦을 정도로 크다.
오키나와 팜힐스 골프장은 클럽하우스 안에 키 큰 야자수들이 있다. 리조트 안팎에는 인도, 캄보디아 등의 조각상들이 널려 있다. 고래의 뼈로 서유기를 구현한 오브제도 있다. 대욕장은 대리석 기둥으로 로마 목욕탕 분위기가 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