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의원직 승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12-10

12·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용직(85) 전 의원은 우리 국민 사이에 널리 알려진 정치인은 아니다. 대한민국헌정회에 따르면 그는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야당인 국민당 전국구(全國區·현 비례대표) 후보로 처음 출마했으나 당선권에 들진 못했다.

그런데 국민당 총재이자 전국구 1번 후보였던 김종철 의원이 선거 이듬해인 1986년 11월 66세를 일기로 별세하며 조 전 의원이 의원직을 승계했다. 그 뒤 김종필 총재의 공화당으로 옮긴 그는 3당 합당 이후인 1992년 14대 총선에 민자당 전국구 후보로 다시 금배지에 도전했다. 이번에도 당선권에 못 들었지만 같은 해 10월 민자당 총재이자 전국구 1번 후보였던 김영삼(YS) 의원이 대선 출마를 앞두고 의원직을 사퇴하며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비례대표 의원을 두 번 이상 지낸 정치인은 여럿 있겠으나, 오직 승계로만 재선 고지에 오른 이는 아마도 조 전 의원이 유일한 듯하다.

한국에서 현직 국회의원인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라면 의원직을 유지한 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의원직은 내려놓아야 한다. 현 이재명 대통령이 그랬다. 1987년 대선에서 이긴 노태우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민정당 전국구 의원이던 노 대통령이 12대 국회를 떠나며 전국구 후보 순번에 따라 정동윤(2025년 별세) 전 의원이 의원직을 승계했다.

대통령 당선인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정 전 의원은 1988년 13대 총선에선 지역구 공천을 받아 당당히 재선의원 반열에 올랐다. 김대중(DJ)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남궁진(83) 전 의원의 경우 1992년 대선에서 YS한테 패한 DJ가 전국구 의원직 사퇴 및 정계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DJ의 의원직을 승계했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건 그로부터 5년 뒤의 일이다.

전국구 의원직 승계의 형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발을 내디딘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배우 강부자(84)일 것이다. 1992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정계에 뛰어들 때 배우 이순재, 최불암, 강부자, 코미디언 이주일 등 연예인들이 대거 동참했다. 이들 가운데 이순재, 최불암, 이주일은 그해 3월 14대 총선을 거쳐 금배지를 단 반면 전국구 후보였던 강부자는 당선권에 들지 못했다. 그런데 대선에서 낙선한 정 명예회장이 국민당 전국구 의원직을 내던지고 정치를 그만두자 강부자가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여성 연예인으로는 처음 여의도에 입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오늘날 전국구에서 비례대표로 이름이 바뀌긴 했으나 이 제도의 골격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에 결원이 발생하면 그 소속 정당의 비례대표 순번에 따라 차순위자가 의원직을 승계하는 점이 대표적이다.

10일 국민의힘 비례대표 인요한 의원이 “윤석열정부의 계엄 이후 지난 1년간 이어진 불행한 일들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극복해야 할 일”이라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비례대표 다음 순번인 이소희 변호사가 의원직을 승계하게 됐다. 22대 국회의 남은 임기는 약 2년 6개월이다. 짧다면 짧고 또 길다면 긴 시간이다. 아직 마흔도 안 된 젊은 이 변호사가 국민의힘 국회의원으로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완전히 무너진 우리나라 보수 정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탈진 직전의 제1야당을 제대로 된 수권 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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