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왜 강원도 평창에 위치하게 됐나 [최수문 선임기자의 문화수도에서]

2025-05-04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지난 5월 1일 강원도 평창군에서 문을 열었다. 지난 2023년 11월 상설 전시 일부를 선보인 이후 약 1년 5개월 만에 특별전시실·실감영상실·어린이박물관 등을 더한 전관 개관이다. 건축면적 2193㎡, 연면적 3537㎡, 지상2층 규모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국도에서 한참 들어가 오대산 월정사 아래에 위치한다. ‘국보’인 조선왕조실록 등의 상설 전시와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국립 박물관이라고 안내되고 있다. 국내에서 국립 박물관의 경우 대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인 데 비해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국가유산청 소속으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국가유산청 소속 박물관은 기존 국립고궁박물관과 함께 2곳으로 늘었다. 서울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과 달리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평창에 세워졌는 데 비록 고속도로와 KTX가 연결한다고 하지만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럼 왜 이곳일까.

역사적으로 보면 전통 시대 조선왕조는 왕조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서울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 등 모두 사고 4곳을 운영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주 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는 모두 훼손된다. 일본 침략군이 물러간 이후 전주 사고를 바탕으로 실록을 복원했고 이번에는 접근이 어려운 산속에 지방 사고 4개를 위치시켰다. 서울 춘추관과 함께 지방에서는 강화 정족산(전등사), 경북 봉화 태백산(각화사), 전북 무주 적상산(안국사), 그리고 강원 평창 오대산(월정사)이다.

조선말까지 존속하던 이들 사고는 일제강점기 이후 다시 고난을 겪는다. 상당수가 파손됐으며 이리저리 이동했다. 그래도 대부분은 국내에 남았다. 다만 적상산 사고본 대부분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북한으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에서 오대산 사고본의 스토리가 가장 극적이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일본으로 788책이 반출돼 도쿄대 등에 보관됐는 데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이후 남은 부분의 환수운동이 펼쳐져 2017년까지 모두 75책이 반환됐다.

일본으로부터의 환수운동을 이끈 것은 조선시대 오대산 사고본을 현지에서 관리하던 월정사 등 불교계와 강원도 평창 지역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환수된 오대산 사고본을 아예 환지본처(還至本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계·강원도 등과 국가유산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기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오대산 사고본이 평창으로 이동했고 대신 관리주체가 ‘국립’인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개관하게 된 것이다. 즉 박물관이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평창에 위치한 것은 아닌 셈이다.

지금 국내에 남아 있는 다른 조선왕조실록은 정족산 사고본 1187책(서울대 규장각), 태백산 사고본 848책(부산 국가기록원), 적상산 사고본 4책(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등이다. 같은 논리로 정족산본이 강화로, 태백산본이 봉화로, 적상산본이 무주로 옮겨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크게 없다. 국가유산청은 “다른 곳의 실록들은 단순 보관 대상이라면 평창 박물관은 본격적인 상설전시와 연구를 위한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이곳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종교계와 지역, 중앙정부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은 전시 등 시설에서도 드러난다. 이름은 다소 거창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지만 실록 가운데 철저하게 ‘오대산 사고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내부 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안내 설명도 오대산본 위주다. 정말 국립박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라면 조선왕조실록 전체 사고본들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다른 사고본의 실물을 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의 더 큰 문제는 예산으로 보인다. 지역에서 제대로 된 조선왕조실록 연구가 가능할지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특히 박물관의 또 다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장고, 보존과학실 등 주요한 부문이 빠져 있다. 기획재정부와 협의 과정에서 예산이 충분히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창이라는 곳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당위성이 설명되지 않은 셈이다. 때문에 현지 박물관에는 국내 오대산 사고본 총 75책 중 12책 등 전시에 필요한 자료만 보관돼 있다. 그외 나머지 오대산본은 여전히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박물관 측은 “보존연구동 건립을 검토 중인데 예산 확보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보다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는 명실상부(名實相符)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을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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