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 사후 14년간 애플을 이끌어온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그간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스마트폰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는 반독점 재판·규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시장에서 반전 카드를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오픈AI가 애플의 전설적인 디자이너와 손잡고 스마트폰을 대체할 AI 기기 제조에 나섰다.
26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중동 순방 동행 초청을 쿡이 거절한 것에 대해 트럼프가 언짢아했다”며 “중동 순방 도중 수차례 쿡을 겨냥해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트럼프의 중동 순방에는 엔비디아·AMD·오픈AI 등 빅테크부터 블랙록·씨티그룹 등 금융계를 아우르는 CEO가 대거 동행했으나 쿡의 모습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연설하던 도중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게 “쿡은 여기 없지만 당신은 와 있다”며 칭찬할 정도로 쿡에 대한 서운한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타르에서는 “쿡과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며 “쿡에게 ‘애플이 인도에 공장을 짓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공개 석상에서 쿡과 애플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NYT는 “쿡은 8년간 트럼프가 가장 총애하는 CEO 중 한 명이었는데 이제 ‘테크계 최고 트럼프 조련사’가 힘을 잃었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뒤끝 보복은 곧바로 이어졌다. 중동 순방 직후인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스마트폰에 대한 25% 관세 도입을 전격 발표하며 ‘애플 응징’에 나섰다. 같은 날에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미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이 인도 혹은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제조되기를 바란다고 쿡에게 오래전부터 말해줬다”며 쿡을 재차 저격했다.
쿡은 트럼프 1기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인물이다. 2기 취임 직후 추진된 정보기술(IT) 기기 관세 유예에서도 쿡의 로비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트럼프와의 관계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애플은 난처한 처지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미국 내 아이폰 제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탓이다. 월가는 미국에서 아이폰을 만들면 가격이 현재 3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법부도 애플을 정조준하고 있다. 애플은 최근 미국에서 진행 중인 에픽게임스와의 앱스토어 반독점 재판에서 “고위 임원들이 명백한 위증을 했고 애플은 고의적으로 가처분을 따르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외부 결제를 허용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5억 유로에 달하는 EU의 디지털시장법(DMA) 위반 벌금에 이어 본국에서도 반독점 규제 압박이 거세지는 양상이다.
사업도 순탄치 않다. AI와 기기 결합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애플은 아이폰 AI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글과 손잡고 ‘AI 폰’ 시장을 공략하는 삼성전자와도 대비된다. 애플은 자체 AI가 없어 오픈AI와 협력에 나섰으나 ‘개인화 시리’ 음성 비서는 연내 출시가 요원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려 구글이 최근 애플 iOS에도 음성 챗봇 ‘제미나이 라이브’를 무료로 제공하며 ‘텃밭’마저 위험해지고 있다.
AI 협력사로 꼽은 오픈AI의 최근 행보는 애플에 치명적이다. 오픈AI는 최근 전설적인 애플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의 스타트업 ‘io’를 65억 달러에 인수하고 스마트폰과 궤를 달리하는 AI 전용 기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애플 디자인 철학을 정의한 디자이너와 아이폰을 대체할 ‘미래 기기’ 개발에 나선 것이다.
분위기 반전이 절실하지만 다음 달 9일로 예정된 연례 최대 행사인 ‘세계개발자회의(WWDC) 2025’에서도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는 마땅치 않아 보인다. 외신들은 운영체제(OS) 디자인 변경과 AI 헬스케어 개선안 정도만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NYT는 “비전프로 헤드셋은 실망스러웠고 시리 신규 서비스 연기는 AI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며 “14년 동안 애플을 이끌어온 쿡 CEO에게 백악관의 새로운 관세 계획 시점은 최악”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