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좋은 예술가가 많이 필요하다

2024-10-27

 “예술가의 역할은 단순히 개인의 재능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에 공감하고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독일의 판화가이자 조각가 ‘케테 콜비츠’가 말했다.

 100년 전, 독일 사회는 전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과 가난한 노동자가 많았다. 콜비츠는 전쟁과 기아로 허덕이는 당시 사회를 ‘직조공들의 봉기’, ‘죽음’, ‘전쟁’ 시리즈 판화 작품을 통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온몸을 바쳤다. 그녀의 예술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4년 동안 열다섯 번이 넘는 공연과 전시 기획은 예술가로서 사회적 예술에 대한 사명감을 갖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예전에는 그림을 잘 그리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남겨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어요.”

 작년 여름, 부안 청소년들과 함께 독일 베를린에 있는 콜비츠 박물관을 다녀온 후 내게 들려준 소감이다. 동학사상과 콜비츠의 예술 모두 민중의 저항과 인류애라는 공통된 바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콜비츠의 판화를 통해 인류애와 사회적 책임감을 깨닫게 해준 강력한 경험을 만들어주었다.

 콜비츠는 누구나 천재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지만, 우리 사회에는 좋은 예술가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의 목적이 단순히 개인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천재 예술가는 혁신적이고 뛰어난 재능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재능이 반드시 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반면, 좋은 예술가는 비록 천재적인 재능이 없더라도 인류애, 사회적 책임감, 공감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변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여수에는 ‘몽이네예나눔’이라는 예술단체가 있다. 그들은 단순한 예술 단체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예술을 이웃과 연결하고 공감하는데 아낌없이 재능을 사용하는 봉사 단체로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음악을 배운 청소년들이 여순사건을 알리는 전시회를 열고, 여수 곳곳에 이순신과 독립운동 벽화를 그린다. 또한 3년 넘게 고령 마을을 찾아가 어르신들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농업과 예술을 결합해 지방 소멸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밤파티를 열어 외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얼마 전, 완주에서 예술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단체를 만났다. 이들은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등 서양음악을 전공한 엄마들이 모인 경력단절 예술가들로, 작년에 창단해 가족음악회를 시작으로 EM 흙공을 만들어 던지거나, 북극곰으로 분장해 환경보호 메시지를 전하는 노래를 부르며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결혼 전에는 큰 무대에 오르는 것이 행복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환경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활동하며 ‘생존’이 아닌 ‘존재’로서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대에 다시 서는 경력단절 여성이 아니라, 끊어진 가족과 이웃, 마을, 그리고 지구를 연결하는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가는 예술가가 되기를 제안했다.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 기후 위기, 인권 문제 등 다양한 글로벌 이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지할 뿐, 진정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아뜰리에 예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중들은 소박하지만 참된 예술을 알아보기 때문이다.”그녀는 천재 예술가보다 좋은 예술가가 더 많이 필요한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았다.

 좋은 예술가는 사회의 문제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경쟁과 비교, 비난 속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인류애가 깃든 사회적 예술이다. 케테 콜비츠가 그랬듯, 우리 사회에도 그러한 시대의 예술가들이 더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지훈 <문화통신사협동조합 대표>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