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티나 오지에비츠 '도시의 불이 꺼진 밤'

2025-05-28

지난달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비행기, 철도, 지하철의 운영이 중단되었고 전화, 인터넷이 끊겼다. 신호등이 꺼진 도로에서 차들은 우왕좌왕했고 멈춰 선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은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도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정적과 어둠으로 뒤덮인 도시는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게 생각했을까?

사실 도시는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다. 문득 전기가 사라진 도시를 보며 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림책 『도시에 불이 꺼진 밤』에는 발전소가 고장이 나 깜깜해진 도시에서 비로소 제 존재를 드러내는 생물들이 나온다.

가재는 해가 진 뒤에도 대낮처럼 환한 호수를 견디지 못해 호수 끄트머리로 밀려났다.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살았던 곳을 떠나 불빛이 비치지 않는 조그만 땅으로 떠난 것이다. 그런데 어둠이 호수 전체를 감싸자 어릴 때 잠을 자던 호숫가의 익숙한 나무 기둥까지 가본다.

가로등 밑에 사는 분꽃은 불빛 때문에 제대로 자랄 수가 없었다. 해가 지면 꽃받침을 펼치고 다채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다른 꽃을 보며 ‘나는 꽃을 피울 수 없는 걸까?’ 고민한다. 하지만 가로등 불빛이 꺼지자 비로소 꽃잎을 활짝 펼친다.

주차장 덤불 속에 사는 고슴도치 역시 밖으로 천천히 나와 밤새 돌아다닌다. 그동안 밖은 밤낮으로 시끄럽고, 밝아서, 먹이를 찾기도 힘들었다. 다른 고슴도치를 만난 지도 너무 오래라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풀밭으로 올라온 개구리는 목청껏 울어대고 날개를 활짝 펼친 나방은 곧장 어둠 속으로, 꽃들의 품 안으로 날아간다. 오소리는 새끼 오소리들에게 처음으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굴 밖으로 나오고, 올빼미는 날개를 쫙 펼치며 날아오른다. 도시의 난개발에 밀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던 생물들은 불이 꺼진 도시에서 당당하고 아름답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간다.

이상기후로 지구 곳곳에서 재난이 발생하고,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해 생존을 위협받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닐까 조바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 희망은 있다. 오직 인간의 편리만을 위한 개발을 멈추고, 다른 생명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지구는 우리가 꿈꾸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도시 곳곳에서 숨 쉬고 있는 생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도시 역시 평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2024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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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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