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질 일깨운 세상에서 가장 번거로운 판화

2025-02-13

척 클로즈의 ‘알렉스-리덕션 블록’

인공지능의 개발이 인간의 활동에 끼칠 영향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이 예술에 대한 얘기다. 예술이야말로 과학 기술의 합리적 세계와는 가장 거리가 먼 영역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인 듯하다. 기능과 효율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무논리가 용납되는 세계, 예측 불가능성이 오히려 환영받는 곳이 바로 예술의 세계이다.

예술, 그중에서도 미술은 과학 기술의 발전과 관련이 깊다. 사실 미술은 원래 기술이었다. 눈으로 본 것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데서 출발했으니, 얼마나 잘 관찰하고 잘 그리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카메라의 발명 이후, 미술은 기술보다는 아이디어에 가까운 어떤 것이 되었다. 내가 눈으로 보는 대상을 최대한 실물과 가깝게 재현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욕망을 카메라가 충족해 주는 순간 화가의 기술은 무색해졌다. 그 결과 화가들은 대상의 재현이 아닌 추상미술로, 그리고 손 대신 머리를 쓰는 개념미술로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현대미술에서 “잘 그렸다”고 하지 않고 “독창적”이라는 말로 비평하는 이유이다.

아이디어가 곧 예술인 60년대

소름 돋게 잘 그린 그림 고집

“남과 다르려면 힘든 길 택해야”

조언 따라 초대형 인물화 도전

노동 과정에서 창의성도 생겨

고통 속 즐거움 아는 건 인간뿐

병약 체질에 난독증 시달려

그렇다면 뛰어난 기술을 타고난 현대 화가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1940년생인 척 클로즈는 손기술이 능한 작가였다. 미국 워싱턴주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선천적으로 병약했다. 어려서는 신경근 이상으로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 불편했고, 6학년 때는 급성 신장염으로 1년 가까이 누워 있어야 했다. 그의 어려움은 신체적인 데서 그치지 않았다. 난독증으로 정상적인 학습이 쉽지 않았고,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도 유달리 힘들었다.

놀랍게도 학교 성적은 대체로 좋았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덕이었다. 기술자였던 아버지와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를 닮았는지 그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국어 시간에는 시를 외우는 대신 직접 삽화를 그려 넣은 시집을 만들었다. 역사 시간에는 사람 이름이나 연도를 기억하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3m가 넘는 지도에 역사적 사건을 그림으로 그려서 제출하기도 했다. 그는 게으르거나 학업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잘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노력한 학생이었다. 그림은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재능, 인생의 돌파구이자 안식처였다.

척 클로즈는 미대에 진학하고 20대에 뉴욕 맨해튼에 입성했다. 1960년대였다. 1960년대의 미국 미술계는 새로운 실험으로 가득했다. 앤디 워홀이 이끄는 팝아트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극단적인 추상으로 간 미니멀리즘, 아이디어를 전면에 내세운 개념미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전통적인 손기술에 의존해 ‘잘 그린’ 그림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였다. 당대 평단을 이끈 미술 이론가는 “인물화 같은 것을 그리는 것이 무의미한 시대”라고도 말했다. 그런데 척 클로즈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인물화를 소름 끼치게 잘 그리는 화가. 그가 그린 인물화는 가까이서 봐도 사진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단지 기술만으로는 진지한 예술가로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 클로즈는 고민에 빠졌다. 좋은 학생으로 칭찬받았던 자질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듯했다. 이때, 동료작가인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조언에서 그는 돌파구를 찾았다. “남들과 다른 것을 하려면, 갈림길에 설 때마다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하라.” 그는 이 말을 평생의 길잡이로 삼는다.

전신 마비되자 입에 붓 물고 그리기도

그는 진부한 장르로 치부되던 인물화를 선택해 아예 초대형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모델의 얼굴 사진을 옆에 두고 커다란 캔버스에 옮겨 그렸다. 작은 이미지를 큰 화면에 옮기기 위해 캔버스를 수많은 구획으로 분할하고 하나씩 물감으로 채우는 노동집약적이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몇 초 만에 완성되는 사진과는 달리 수개월이 걸렸다.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기 위해 일부러 붓을 버리고 에어브러시를 사용하기도 했다. 물감에 물을 탄 후 작은 스프레이를 뿌리는 이 방식으로 그린 작품은 완성에 14개월이 걸렸다. 에어브러시를 사용한 그의 회화가 1970년대 말 잉크젯 프린터의 발달에 영감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의 전략은 유효했다. 2~3m 높이의 커다란 캔버스에 사진과 혼동될 정도로 생동감 있게 그려진 인물 초상화는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화가의 기술, 그리고 시간과 노동 자체에 대한 순수하고 직관적인 경외감이기도 했다. 그 스케일과 정교함에 압도되는 시각적 경험이 오히려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척 클로즈는 유명해졌다. 미국 전역의 웬만한 미술관 중 그의 작품을 하나쯤 구입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 안정된 커리어를 쌓아가던 화가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1988년 12월의 어느 오후, 미술 시상식에 참석하던 중에 그는 갑자기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이상한 증상을 겪고 비틀거리며 행사장을 나와 길 건너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복도에서 쓰러지고 한 시간 후, 그는 목 아래로 전신이 마비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시종일관 손을 쓰는 작업을 고집한 그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이었다.

그는 병원에 누워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개념 미술을 했다면 불편해진 몸이 장애가 되지 않을 텐데. 나도 이제 남들처럼 선반 같은 걸 만들어 놓고 예술이라고 말할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손을 움직여 형상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할 때는 그것이야말로 예술이라는 행위의 본질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입으로, 나중에는 손목에 붓을 묶어서 다시 그림을 시작했고 팔의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하여 다시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한다. 휠체어에 탄 채로 그린 90년대 이후의 작품들도 각광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도 1993년 작품이 한 점 소장되어 있다. 동료 화가인 알렉스 카츠의 얼굴을 묘사한 판화 작품이다. 카츠가 “너 때문에 내가 화가보다 모델로 더 유명해질 판”이라고 할 정도로 척 클로즈는 카츠를 모델로 한 작품을 유독 많이 만들었다.

대체로 화가들은 자신의 대표 화풍, 시그니처 스타일을 만들어놓고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여 변주한다. 척 클로즈는 정반대의 노선을 택했다. 그는 평생 인물 초상만 그렸고, 대상도 거의 바꾸지 않았다. 동일한 소재를 반복하는 대신 기법과 재료를 달리해 가는 실험을 지속했다. 초기의 에어브러시 외에도 손가락 지문, 태피스트리, 판화, 사진 등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했다. 스스로에게 어려운 과제를 부여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하는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기술자였다.

‘알렉스-리덕션 블록’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작품은 피카소가 개발한 리덕션 판화라는 독특한 기법에서 출발하여 그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크스크린이라는 또 다른 기법을 결합시켜 만든 작품이다. 판 하나를 명암 표현에 따라 점차 깎아가며 매 단계를 종이에 찍는 방식이 기반을 이룬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번거롭고 귀찮은 제작 과정은 무려 2년이 걸렸다. 한마디로 사서 고생하는 일, 도전과 문제 해결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예술이 기술 아닌 시대에 기술 천착

척 클로즈는 예술이 더 이상 기술이기를 거부한 시대에 기술에 천착한 작가였다. 그리고 이제, 아이디어도 인간만의 것이 아닌 시대가 열리고 있다. 예술의 모습은 또 한 번 달라질 것이다. 창의성이라는 개념의 정의가 바뀔 수도 있다. 그때 예술가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데 클로즈의 예에서 보듯 어떤 창의성은 노동의 과정 속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노동 그 자체의 즐거움도 포기할 수 없다. 칼럼을 쓰는 일도 비슷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이런저런 경험과 생각들을 조합하며 수 시간 머리를 쥐어뜯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챗GPT에게 척 클로즈에 대해 인공지능이라는 주제와 연결 지어서 칼럼을 써달라고 하면 이 모든 수고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이 함께 사라질 것이다. 사서 고생하는 일, 자발적으로 고통을 선택하는 일, 그 고통 너머에, 혹은 고통 속에도 즐거움이 있음을 아는 것만은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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