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핵심 기술 유출과 마약류 범죄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던 합동 수사 조직 논의는 5개월 가까이 ‘올스톱’됐다.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등에 대한 탄핵소추, 직무 정지가 이뤄지고 부처 간 협의도 대부분 중단됐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와 민생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이들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한 권한대행 주도로라도 합수단 논의가 재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정부는 검찰이 지휘하는 마약범죄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기로 했지만 12·3 비상계엄 이후 현재까지 논의를 전면 중단하고 설치를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마약범죄합수본은 검찰과 경찰·관세청 등 마약류 범죄 관련 유관 기관을 한데 모아 전담 수사 본부를 구성하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검찰뿐 아니라 경찰과 관세청 직원까지 포함하면 규모만 100여 명에 이르는 마약류 범죄 전담 수사팀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수사단은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비슷한 시기 설치가 논의됐던 기술유출합동수사단도 계엄 이후 관련 후속 절차가 완전히 멈췄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대검찰청과 국가정보원 등 범정부 기관으로 구성된 기술유출합동수사단을 구성하기로 협의했다.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하면 합수단에서 빠르게 수사에 착수하고 범죄수익까지 철저하게 환수하는 것이 목표였다. 합수단은 수원지검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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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류 및 기술 유출 범죄가 최근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처할 합동 수사기관 설치가 늦어지는 것은 정치적인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합동 수사기관은 각 정부 부처 간 조율을 통해 만들어져야 하는데 계엄 이후 각종 탄핵 등으로 이를 지휘한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설치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고 했다.
마약류 범죄와 기술 유출 범죄는 막대한 범죄수익과 연결돼 있는 데다 갈수록 지능화·은밀화하고 있어 범죄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마약류범죄의 경우 밀수와 유통을 넘어 지난해는 우리나라에서 고체 코카인을 직접 제조하려다 적발된 사례도 나올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기술 유출 범죄 역시 성공 시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어 최근 적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퇴사 이후 회사를 설립하고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4000억 원을 투자받고 반도체 핵심 기술인 2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을 빼돌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계엄 이후 정쟁만 가열되는 혼란한 틈을 비집고 마약류 및 기술 유출 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마약류 사범 437명이 검거됐다. 역대 최대 인원으로 전년 동기 2.3배 늘었다. 해외 기술 유출도 마찬가지다. 국가수사본부도 이달 초 “지난해 해외 기술 유출 사건 검거만 27건”이라며 “역대 최다 수치”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국가가 보호하는 국가 핵심 기술은 11건이었고 20건이 우리나라의 기술 경쟁국인 중국으로 유출되는 범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