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두 루푸를 아시나요?

2025-04-24

3년 전 이맘때 (2022년 4월 17일) 한 피아니스트가 세상을 떠났다. 라두 루푸(사진)라는 단순한 이름이었다. 열렬한 클래식 팬이 아니라면 몰랐을 이름이다. 생전에 유명세를 탐하지도, 인터뷰에 응하지도 않았으며 1997년 이후로는 오로지 라이브 공연만 하며 녹음도 남기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 아닐까. 그러나 그는 시쳇말로 못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듣는 사람은 없다는 명 피아니스트였다. 그를 겪어 아는 음악가와 애호가들은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그리움을 가지고 그를 이야기했다.

그의 음악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그 음색을, 그 아찔한 악흥의 한때를, 잠깐 생겨났다가 금세 휘발되는 그 청각적 향기를, 말을 걸어오는 듯한 그 다정함을…. 늘 대상의 뒤를 좇는 말로는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를 겪은 이들은 애써 보아야 근사치일 뿐인 그 말로 “가고 오지 않는 아름다움의 이름”(시인과 촌장, ‘사랑 일기’)을 연신 부른다.

그건 다 루푸가 귀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루푸는 동료 음악가들이 길을 잃고 불안해할 때면 기꺼이 귀를 내어주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씨와의 일화가 인상적이다. 자신의 우상 루푸가 그를 위해 파스타를 만들어 주고 음악 이야기를 들어줄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2015년 쇼팽 콩쿠르 1차 예선을 앞두고 극도로 긴장했던 조성진은 루푸의 격려 전화를 받고 너무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고 전한다.

라두 루푸는 말이 없다. 자기를 잊을 때 연주가 더 잘 된다는 이 음악가는 실로 음악과 닮은 삶을 산 것이다. 그랬더니 이제 마음에 루푸의 음악을 새긴 이들이 루푸 대신 말하기 시작했다. 말로는 음악을 잡을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잡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귀는 마음으로 향하는 통로. 말이 없어도 마음에 새겨진다는 믿음 덕에 모든 따뜻한 기억은 마음에서 만나 영원이 된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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