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아수라장이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가족의 시신이 어떻게 수습되고 있는지 안내받지 못한 채 공항 대합실 1·2층을 헤맸다.
“대체 내 가족을 어디서 찾으라는 거냐.” 이들의 절규는 과거 참사 때 들려오던 절규와 유사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이태원 참사 때도 희생자 가족들은 정보를 전달받지 못해 “국가가 없다”고 울부짖었다. 그간 참사 유가족의 알 권리가 뒷전으로 밀리던 문제가 다시 반복되는 양상이었다.
30일 오전 제주항공 참사 현장에서도 유가족의 알 권리는 뒷전이었다. 시신 수습부터 신원 확인, 시신 검안까지 유가족을 전담해 안내하는 이 하나 없었다.
한 남성은 “신원확인이 됐다고 해서 임시 안치소로 가는 버스에 타서 2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신원확인이 안 됐으니 다시 내리라’고 하더라”라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소리쳤다.
유가족들은 이후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임시 안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3~4시간씩 대기했다.
유족들은 과거 참사를 떠올렸다. 한 20대 남성은 “이게 지금 세월호·이태원 참사 때랑 뭐가 다르냐”며 “그 때보다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 또다시 트라우마를 겪게 생겼다”고 말했다. 형을 찾고 있다는 남성은 “그 누구도 가족들에게 먼저 설명해 주거나 얘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유족들이 악에 받쳤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참사 대응 초기 단계부터 유가족에게 필요한 정보를 수시로,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제언이 이어졌다. 4·16 재단은 2021년 발간한 <재난 및 안전사고 피해자 권리 매뉴얼>에서 “피해자는 안전사고의 발생 경위, 구조 및 수습 과정 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가 있다”고 권고했다. 유가족을 참사 피해자로 규정해 정보 접근성을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23년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17개 광역지자체 대상으로 ‘재난피해자 권리보호를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피해자들의 알 권리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9개 재난 피해자들이 모인 재난참사피해자연대는 지난 29일 “피해자들에게 구조, 수색, 병원 이송 및 향후 지원에 대한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공식 브리핑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유가족은 가족의 행방을 알기 위해 직접 동분서주 뛰어다녀야 했다. 참사 당일 유가족 대상 브리핑을 맡은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생존자 2명을 3명이라 잘못 발표했고, 사망자 5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하는 등 혼선을 일으켰다. 일부 유가족은 “왜 우리 엄마 이름이 갑자기 빠졌냐”라거나 “그럼 죽은 사람이 살았다는 거냐”며 항의했다. 국토부 관계자가 30분마다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국토부는 지난 29일 오후 10시30분에서야 피해자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항공기 사고 현장조치 행동 매뉴얼상 유가족 지원시설은 사고 발생 2시간 이내에 설치돼야 하지만 규정보다 약 11시간 늦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튿날 오전 3시가 넘어 “시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해 시신 인도까지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안내했다.
임기홍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나 기업은 사후 책임추궁 소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재난 발생 직후 모든 정보와 사실관계를 비공개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당국은 사건 초반 조사 단계부터 유가족을 참여시키고 그들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등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