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플레이스
“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의 태도와 세계관을 담으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강력한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텍스트힙’이라는 단어가 회자되는 요즘이지만, 막상 현실은 좀 다릅니다. 2025년 우리나라 인구 독서율은 48.7%로 10명 중 5명이 지난 1년 동안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국가데이터처 발표). 지난 집계에서 최근 1년간 도서관 이용 경험률은 14.3%에 그쳤고요. 그래서일까요. 최근 새로 선보이는 도서관은 그저 책을 빌리고 읽는 장소(리딩룸)를 넘어, 누구나 쉽게 드나드는 ‘공공의 거실(리빙룸)’으로 진화했습니다. 많은 정보를 온라인으로 얻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일방적 지식 습득 대신 교류의 공간으로 거듭나고자 한 거죠.

지난달 25일, 수원 광교에 개관한 경기도서관도 이 변신에 동참하는 곳입니다. ‘세상에 없는 도서관’을 내세우며 기후·환경·AI·사람 중심의 연결고리를 자처했어요. 이미 개관 전부터 독특한 나선형 구조의 설계안이 화제를 모으며 일명 ‘달팽이 도서관’이라 불린 이곳은 공공 도서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죠. 지상 5층과 지하 4층으로, 연면적이 2만7795㎡나 되거든요.
게다가 9년 만에 완공이 되다 보니 개관일부터 도서관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습니다. 첫날에만 2만 2037명이 방문했고, 대출 권수는 3107권으로 집계됐어요. 지난해 연간 공공도서관 이용자 수가 약 17만 명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숫자죠. 지금도 주말은 하루 1만여 명이 꾸준히 방문한다고 하는데요. 다른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온다는 이곳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비크닉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칸막이 열람실 대신 소파서 책보고, 놀면서 어울린다
네모반듯하게 구획된 일반 도서관과 달리, 탁 트인 원형 중앙홀과 개방감은 마치 대형 서점이나 복합문화공간에 온 듯한 분위기를 냅니다. 경기도서관을 설계한 해안건축 김태만 대표는 “도서관의 원형인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의 개념에서 착안, 두루마리처럼 연속된 공간을 통해 파편화된 지식이 아닌 시대의 변화를 포용하는 열린 공공의 장을 그렸다”고 설명했어요. 여기에 “내부와 외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나선형 구조는 지식이 쌓이는 동선이자 서가의 역할을 하며 이용자들이 걸음을 옮길수록 자연스럽게 지식을 탐구하도록 유도한다”는 말도 더했습니다. 실제로 공간에 들어서면,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든 로비에서 서가로, 라운지에서 공방으로 자연스럽게 닿게 됩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다닥다닥 붙은 칸막이에 얼굴을 박고 책을 보는 대신, 자연광이 내리쬐는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캠핑장처럼 조성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도서관의 장서는 총 34만 4261권으로 지속해서 확대 중인데요, 이 중에는 개인이 구비하기 쉽지 않은 고가의 예술 서적을 따로 모아 놓은 아트북 라운지나 어린이들이 전 세계 22개국 언어의 책을 살펴볼 수 있는 ‘세계친구책마을’ 같은 이색 공간도 있습니다. 가족들과 콘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레이 존도 갖춰져 있고요. ‘도서관’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공부의 압박 대신 언제든 재밌는 걸 찾아 들르고 싶은 사랑방 같은 모습이죠.
나선형 계단 감싼 이끼의 비밀

경기도서관은 건축 단계부터 ‘기후 도서관’을 목표로 설계됐습니다. 이는 경기도 주요 정책 중 하나인 기후·환경 이슈를 반영한 거라고 해요. 지열과 태양광을 활용해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한편, 중앙의 나선형 계단인 ‘지혜의 샘’을 통해 자연 채광을 극대화하고, 친환경적인 공기 순환을 유도합니다. 또 건물 외관의 부챗살 모양 수직 기둥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내부 조도를 조절해 조명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벽을 감싸는 친환경 이끼인 스칸디아모스가 공기 정화, 습도 조절, 소음 감소 등에 보탬이 되기도 하고요.


환경 관련 책들을 입구인 로비 서가에 비치하거나 ‘기후환경 분류표’를 두는 것도 눈길을 끕니다. 4층 ‘지속가능한 공간’에는 기후위기 관련 서적뿐 아니라 다양한 이끼를 볼 수 있는 ‘이끼연구소’, 직접 업사이클 물건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후환경공방’도 자리합니다. 모두 이 공간을 찾는 이들이 기후 문제를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든 것들이죠.
AI 품은 도서관의 변신

경기도서관의 또 다른 주제는 ‘AI’입니다. 정확히는 인공지능 시대에 도서관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까 하는 거죠.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이미 디지털 정보나 AI 활용이 익숙한 시대에 도서관은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짧은 호흡)와 깊이 있는 지식(긴 호흡) 모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면서 “텍스트를 읽고 사유하며 전시·공연·학습·제작·교류 등 지적 확장이 일어나는 전방위적 문화공간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경기도서관이 그 테스트베드인 셈인데요. 이곳에서 처음 개발한 ‘AI 독서토론실’은 인공지능과 사람이 함께 하는 독서토론장입니다. 특정 도서를 읽고 자신의 의견을 인공지능에 설명하면 인공지능이 그에 따른 의견이나 정보를 제시하며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실험 중이죠.

5층에 마련된 ‘AI 스튜디오’는 챗 GPT·제미나이·클로드 등 8종의 유료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디지털 콘텐트를 만드는 예약제 공간입니다. 그간 구독료 때문에 비용이 부담됐거나 컴퓨터 사양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은 도민들에게 오픈 스튜디오를 내준 건데, 첫날부터 이용객이 꾸준히 찾는다고 합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어린이들을 위한 코너도 눈에 띕니다. 올해 CES 2025 최고혁신상을 받은 AI 독서 서비스인 북스토리를 배치해 뒀고, 그림을 그리면 AI가 아이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죠.
조용한 도서관은 옛말...시끄럽고 자유로운 놀이터 돼야

오늘날 도서관이 ‘공공의 거실’로 변화한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집과 일터가 아닌 ‘제3의 공간(third place)’이 커뮤니티의 장으로 떠오르며 공공기관의 무게추도 옮겨왔죠. 미국의 유서 깊은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2004년 미래의 도서관을 표방하며 파격적인 리모델링을 선보였어요. 이때 등장한 개방형 공간 ‘리빙룸(living room)’은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며 휴식하거나 토론할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았습니다. 2018년 개관한 핀란드 헬싱키 중앙도서관인 오디 도서관 역시 모임과 휴게실·주방·스튜디오·극장 등을 갖춘 공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 지식의 권력 구조가 재편되면서, 이제 도서관은 책과 더불어 공간을 공공화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겁니다. 건국대학교 문헌정보학과 노영희 교수는 “도서관의 공간서비스 개념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라면서 “기존 책을 보존 관리하는 역할은 다양한 IP(지식재산권)콘텐트의 경험으로 대체되며, 수많은 장서를 AI 로봇이나 드론으로 관리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경기도서관은 올해 말까지 시범 운영 기간으로 그사이 도민 의견을 반영해 내년 1월 정식 운영할 예정입니다. AI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도서관의 새로운 전략과 진화가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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