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취재 차 나간 경복궁에는 한복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남녀 커플은 물론이고 부모,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러 명의 남자 친구가 단체로 한복을 빌려 입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한복을 차려입은 남자들은 꼭 모자를 쓴다. 이들이 즐겨 쓰는 모자는 익선관과 갓이다. 익선관은 왕과 왕세자가 곤룡포를 입고 집무할 때에 쓰던 관인데, 옷은 곤룡포를 입고 모자는 갓을 쓴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물어보니 답은 단순했다. “이게 더 멋있어 보여서.” 우리로선 웃픈 풍경인데 OTT·영화·SNS 등을 통해 한복을 접한 외국인이 익선관과 갓의 쓰임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1시간에 1만원 내외의 대여비를 내고 한복을 빌려 입은 그들이 ‘멋’을 우선 선택하는 건 당연하다.
AI가 그린 한복들 보며 웃픈 심정
똑똑하고 정교한 데이터 필요해
사실 내로라하는 세계 유명 관광지를 다녀 봐도 외국인이 방문 국가의 전통 복식을 입고 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본 최고의 관광도시 교토에 가 봐도 요즘은 기모노를 입은 외국인 여성 관광객이 가뭄에 콩 나듯 있을 뿐이다. 시스루 저고리, 고름 대신 리본, 갓과 익선관의 혼재...국적 불명의 한복 차림에 할 말은 많지만, 누구든 많은 사람이 입다 보면 국민의 관심도가 높아져서 ‘진짜 전통 한복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 것’이라고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만난 이혜미 한복 디자이너가 불쑥 물었다. “구찌 한복 보셨어요?” 이 디자이너는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수함, 현대인에 맞는 한복의 가능성을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람이다. “샤넬·에르메스·루이 뷔통·디올·프라다 한복도 있어요.”
이 디자이너가 보여준 사진들은 AI가 그려낸 상상의 한복들로 해외 명품 브랜드의 특징들을 디자인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샤넬 한복은 까멜리아 꽃과 블랙&화이트 색상 조합을, 구찌 한복은 GG엠블럼과 초록·빨강 삼선 디자인을 반영해 한복을 디자인했다. 명품 브랜드의 시그니처들만 쏙쏙 뽑아 반영한 모습이 재밌어 웃다가 뒤늦게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한복인데 한복이 아니다. 저고리 길이, 동정의 넓이와 높이, 소매의 입체 재단, 치마 말기 장식은 물론이고 버추얼 모델들의 머리 모양과 장식이 이상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데 낯설죠? 한·중·일 전통 복식의 특징들을 교묘하게 섞어 놔서 그래요. 느긋하게 생각할 때가 아니에요.”
엄청난 양의 데이터로 학습해서 아웃풋을 내놓는 게 AI의 기본. 그렇다면 지금 현재 AI에 쌓여 있는 ‘한복’ 관련 데이터가 엉망이라는 얘기다. 미래의 문화 콘텐트 생산에서 AI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결국 데이터 싸움이라는 건데, K컬처 관련 데이터는 얼마나 정확하고 적확하게, 또 정교하고 촘촘하게 쌓여 있을까.
지난해 5월 최응천 전 국가유산청장이 고궁 근처 ‘국적 불명 한복’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경복궁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지만, 실제 한복 구조와 맞지 않거나 ‘국적 불명’인 경우가 많다”며 “업계가 원하는 부분을 반영해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두면 우리 한복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강조하며 한복 착용자의 고궁 무료 관람 조건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지금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외국인들은 한국 관광 팁을 제공하고 기념하는 SNS에 국적 불명의 한복 사진을 올리고, 새로운 관광객들은 휴대폰을 열어 똑같은 복장을 찾는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GD가 매번 갓끈을 단 모자만 쓸 수도 없고, 박보검이 매번 사극에만 출연할 수도 없다. 체계적인 한복 정책과 교육에 관한 논의 없이 보여주기식 행정만으로 AI를 제대로 학습시킬 수 있을까. MB 정부가 ‘한식세계화’를 외치고 K푸드가 세계인이 찾는 음식이 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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