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미국을 공손하게 하는 것

2025-01-26

“이전 두 취임식에서 보았던 역동적인 다양성은 싹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의기소침해질 정도로 획일적인 장면, 압도적으로 백인과 남성만으로 구성된 장면이 있었다. 나는 그런 장면을 살면서 자주 접했다.”

미셸 오바마의 회고록 『비커밍』 속 에필로그에는 지난 2017년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취임식 풍경이 세세히 적혀 있다. 8년간의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마친 그가 그 자리에서 “울컥하는 감정을 다스려야 했던” 것은 후련함 때문도, 아쉬움 때문도 아니었다. 고군분투하며 쌓아 올렸던 미국의 다양성이 한순간에 ‘백인 남성’으로 획일화되는 모습을 목도해야 했기 때문. 당시 “억지로라도 웃으려던 노력을 그만두었다”던 그는 8년 뒤 열린 트럼프 2기 출범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돌아온 트럼프는 여전히 미국과 백인을 동일시한다. 취임 첫날 인종·성 소수자 등을 보호하는 ‘다양성·평등·포용(DEI) 정책’을 폐기했고, 행정부 장관직 후보자로는 15명 중 3명을 제외하고 모두 백인으로 꾸렸다. 하지만 미셸 오바마가 지난 20일 열린 취임식에 참석했다면, 또 다른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임기에 재선에 실패하고 퇴임 후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는 백인만큼, 어쩌면 백인보다 더 중요한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는 ‘미국=백인’보다 ‘미국=자본’에 가깝다.

이 시대에 자본이 모이는 곳은 IT 기술 업계다. 취임식 당일 트럼프가 가족 바로 다음 자리에 배치한 인사들은 테슬라 일론 머스크 CEO(최고경영자)를 포함해 구글·아마존·메타 등 빅테크 수장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으로, 세계 부호 1위(머스크), 2위(제프 베이조스), 3위(마크 저커버그)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800석 규모의 국회의사당 로툰다 홀 좌석이 부족해 일부 공화당 고위 정치인들은 다른 장소에서 대형 화면으로 취임식을 지켜봐야 했지만,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추 쇼우즈 CEO는 버젓이 현장에 자리 잡았다.

인맥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특성상 국내에서도 취임식 참석자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많이들 갔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한국의 참석 인사는 많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믿을 것은 기술력밖에 없다. 취임 다음 날 트럼프가 대대적으로 발표한 AI 합작회사 스타게이트 설립에는 정치적 ‘깐부’ 일론 머스크의 xAI가 아닌, 경쟁 업체인 오픈AI가 들어갔다. 오픈AI CEO 샘 올트먼은 머스크와는 공공연한 앙숙 관계. AI·양자 등 기술만 갖췄다면 인종도, 정치 진영도, 인맥도 앞지를 수 있다. 이는 ‘위대한 미국’을 더 강력하게 부르짖는 트럼프 2기를 마주한 우리에게 유일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스타게이트 설립 기자회견 중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옆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공손한 트럼프의 모습은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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