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이렇게 힘이 빠져 한반도에 당도한 적은 없습니다. 이처럼 풀이 죽어서야 지혜의 밝음과 어둠의 상징성이 함께하는 푸른 뱀의 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일상에서도 미열 같은 흥분감을 주는 연말연시의 자극을 느낄 사이도 없었습니다. 새해 덕담의 양도 줄고 강도도 낮아졌다는 게 중론입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채택한 1월 1일 새해가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래 가장 망연자실한 모습입니다.
거친 말과 어투가 양극화 초래
대선일, 헌재 성향 두고 설 분분
계엄 규명 철저해야 공통체 회복
새해는 태양과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만들어 내는 시간의 차별화로 존재합니다. 인간이 동질의 연속체인 시간의 흐름을 작년 새해 내년, 현재 과거 미래 등으로 따로 구분하는 것은 과거보다는 좀 나은 현재, 현재와는 좀 다른 미래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보다 발전한 내가, 나라가, 공동체가 되고 싶은 소망입니다. 그래서 새해는 혼자 와서도 힘없이 와서도 안 됩니다. 희망과 함께 활기차게 와야 합니다. 원단의 해가 하늘과 대지를 붉은 기운으로 물들이며 떠오를 때 기도하고 환호하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새해가 걱정스럽습니다.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하면 될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과 나라보다 이익을 좇는 정치꾼들의 싸움박질로 기진맥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현직 대통령 체포, 체포적부심 청구를 기각한 서부지법에 대한 집단 폭력난동과 같은 ‘초유’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당리당략에 따른 사법의 정쟁화와 증폭되어온 사법부 불신을 빌미로 재판 절차와 결과를 놓고 상상할 수 없던 초유의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지난 20일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트럼프의 ‘미국 최우선주의’의 폭풍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첫 국제회의 격인 23일 다보스 포럼에서 트럼프는 필요하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희생하면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실행하겠다고 했습니다. 트럼프를 특징짓는 ‘위협 메시지’는 미국의 실제 정책이 되고 있습니다. 트럼프와 국방장관 지명자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한 것도 ‘한반도의 비핵화’가 무산될 수 있는 불길한 조짐으로 읽힙니다. 트럼프는 23일 미국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영리한 김정은에게 연락을 취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기류에 청년들을 가족도 모르게 머나먼 외국 땅에 총알받이로 내모는 김정은의 무자비함이 결합하면 북한의 핵폭탄은 더욱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할 것입니다.
세계의 찬사를 받은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루어 낸 대한민국이 내우외환으로 시련을 맞고 있습니다. 지금의 탄핵 혼돈은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나 유사내전”의 위기 상황으로 ‘정치 없는 민주주의’, ‘정치의 양극화’(최장집, 중앙SUNDAY 1월 18일자) 탓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꾼들은 ‘내우’의 짓거리를 멈추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협력의 소통을 가로막고 양극화를 초래한 ‘말과 어투’를 바꾸어야 합니다. “서양은 호메로스 시대부터 ‘무기’로 적을 죽이는 전쟁과 ‘말’로 상대방을 설복하는 언쟁을 동등하게 취급”(『수사학』, 안재원 편역)할 정도로 말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말에 대한 경청과 존중, 말의 품격과 예절, 말과 대화를 통한 사실과 진리 추구의 자세를 견지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이 흉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하는 소통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탄핵 재판을 놓고 설왕설래가 분주합니다. 벚꽃·장미·단풍 대선, 헌법재판관의 성향과 예상 결과에 대한 분석이 난무합니다. 2월 말 늦어도 3월 초, 심지어 2월 28일에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온다는 민주당의 바람을 포함하여 정치집단의 당리당략에 따른 압박이 거셉니다. 오로지 대선 유불리만을 겨냥한 모든 예측과 겁박은 빗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2016년 이미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지만, ‘적폐 청산’과 같은 잘못된 정치의 여파로 다시 탄핵 재판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번 재판은 헌법이 보장하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여 ‘무정부 상태’ ‘유사 내전’이 발생한 원인·과정·내용·맥락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또 쉽게 국민이 알 수 있게 하는 ‘국민과 소통하는 재판’을 기대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은 정치적 요소 못지않게 협력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는 소통적 요소가 필요합니다. 정치꾼들의 권력욕에 이용당하지 않고 국민에게 올바른 소통의 지혜를 주는 공명정대한 재판을 기대하는 까닭입니다.
김정기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