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이 아니라 ‘빛살무늬’입니다

2025-03-1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득한 고대 우리 조상으로 믿어지는 사람들이 처음 생활에서 사용한 문명의 도구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릇이겠지요.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펴보면 맨 앞부분에 빗금 친 무늬가 있는 토기가 등장하고 이 토기에 대해 ‘빗살무늬토기’라고 가르쳐줍니다, 토기의 겉면에 빗금 친 무늬들이 있는데 이것을 머리 빗는 빗의 살을 뜻하는 무늬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나온 위 토기는 그러한 '빗살'이란 이름의 토기의 대명사입니다. 우리는 배우는 처지에서 빗살무늬라는 이름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원래 북유럽의 판란드와 북부독일 일대에서 발견되는 신석기시대 토기를 핀란드 고고학자가 독일어로 ‘Kamm Keramik(Kamm’은 영어의 ‘comb’, ‘Keramik’은 ‘ceramic,’ 곧 ‘comb’ ceramic이다)으로 부른 것을 일본의 고고학자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가 1930년에 빗이라는 뜻의 櫛(즐)이란 글자를 써서 즐문(櫛文)토기로 번역하였고 이것을 우리 고고학계가 빗살무늬 토기라고 뒤쳐서 현재까지 쓰는 것이고요.

이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가 다른 의견을 많이 내었으나 오로지 겉으로 드러난 형태만으로 부르다 보니 이 토기에 왜 이런 무늬가 나왔는가를 살피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우리 고대인들의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원로 서예가이신 근원 김양동 님의 주장입니다. 김양동 님은 벌써 10년 전에 이 무늬들이 상징하는 바를 새롭게 규명해서 연구서 《한국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을 펴냈는데, 최근 열린 한 전시회에서 김양동 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이 문제가 중요한 것임을 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보았지만, 빗살무늬라는 이름은 우리가 붙인 이름도 아니고 북유럽문화를 설명한 단어를 사실상 비판 없이 갖다 쓰는 것인데. 그쪽의 형태들이 우리의 토기와는 달라서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양동 님은 이 토기가 곡식의 저장과 음식물 조리 등에 쓰인 문명의 도구로서, 이 땅에 살던 고대인들은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그들에게 곡식을 잘 여물게 하는 태양을 숭배하게 되었고 그러한 태양의 햇살이 잘 비추어 곡식을 풍요롭게 만들어달라는 염원이 늘 있었기에 그것을 그릇 표면에 그리게 된 것이라고 보았답니다. 그러니까 이 토기에 그려진 무늬는 머리빗을 뜻하는 빗살이 아니라 햇빛이 사방으로 퍼져 세상을 밝게 하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곧 햇빛의 햇살 무늬, 곧 '빛살'무늬라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대단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청동거울(한자식으로 다뉴세문경이라 불렀지만, 우리 이름으로 '고리 달린 잔무늬 청동거울'이라고도 한다)을 보면 0.3밀리의 간격으로 엄청나게 가는 실선 1만 3천 개로 수많은 무늬를 새겼는데, 이 거울의 무늬가 맑은 아침에 눈 앞에 펼쳐지는 햇살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보면 토기의 무늬와도 의미가 부합되고, 그러기에 토기의 무늬도 청동거울의 무늬도 고대인들이 해를 상징하는 햇빛의 퍼짐(빛살)을 상징화해서 장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유럽의 이른바 빗살무늬 토기와 중국의 빗살무늬 토기가 우리나라 토기와 또 다르다고 합니다. 곧 중국 것은 바닥이 평평한데 우리 고대인들이 쓰던 토기는 전부 바닥이 뾰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같은 개념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고대인들이 특히 해를 숭배하였음은 여러 군데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아사달이라는 지명도 밝은해를 뜻한다고 알려져 있고요. 김양동 님은 우리가 빗살무늬라고 부르면 우리 고대인들의 이런 태양을 숭배하는 우리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빛살무늬라는 개념으로 정확하게 불러야만 우리 고대문화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고대인들의 문화,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그 근본을 파악하는 것이기에 앞으로는 빗살무늬가 아니라 ‘빛살무늬’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일본인 학자들도 일찍부터 즐목문토기라는 용어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많이 내어 궁여지책으로 유문(有紋)토기, 곧 무늬가 있는 토기라는 정도로 부르다가 그것도 정확하지 않다고 하여 그냥 즐목문토기로 쓰는 경향이고, 우리 학자들도 여러 의견을 내었으나 다른 대안이 없어, 그냥 쓰자는 의견이 많은데, 이렇게 우리의 토기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낸 용어가 있다면 그것을 써야 맞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김양동 님은 신석기시대 토기의 무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유형의 이름짓기가 있었지만, 형태의 유사성에서 유추한 이름들이 대부분이어서 상징을 해석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빗살무늬를 빛살무늬로 바꾸는 것은 받침 하나를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 상징성에 대한 해석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며, 이렇게 시작부터 우리 문화의 상징을 제대로 파악해야 우리문화의 본질을 알고 그 힘을 더욱 키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보니 토기의 표면에 그려진 많은 선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햇살이 우리 눈에, 우리 마음에 어떻게 비치는가를 그려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 햇살은 처음 시작되어 곧 퍼지고 중간에 여러 각도로 마치 춤을 추듯 눈부시게 변하는 속성을 그려낸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 역사 고고학 교과서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빗살무늬' 토기는 이제부터 '빛살무늬' 토기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아울러 이런 우리 고대문화의 상징성을 새롭게 밝혀낸 근원 김양동 님의 혜안과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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