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2024-07-04

양봉열 수필가

황리단길을 걷는다. 북새통에 신명 난 동서들은 아직도 청춘이다. 젊은이들처럼 추억의 십원빵을 손에 들고 먹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해맑다. 엄마가 아이를 챙기듯 내 입에 빵을 넣어주곤 깔깔거린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손에 땀을 쥐며 고속도로를 함께 달려왔는데, 소녀처럼 웃는 동서들 모습이 곱기만 하다. 우리를 김씨 가문 며느리로 만난 이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동서들과 나들이를 나섰다. 공항에서 만나던 날, 꽃단장하고 나온 그들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풍선처럼 보였다. 수학여행을 나선 여고생처럼 달뜬 모습이 어찌나 상큼하던지, 진작 함께하지 못한 게 미안스러웠다.

렌터카 운전은 내가 맡기로 했다. 모두 고속도로 경험이 없다고 망설이다, ‘그래도, 형님’이라며 추대되었으니 어쩌랴. ‘하면 된다.’며 살았던 열정은 나이만큼 사라지는 것일까. 막상 운전대를 잡자, 초보운전자처럼 어깨가 뻣뻣하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고속도로 진입로에 들어섰다. 침이 마르고 가슴은 콩알만 해졌다, 갈림길 앞에서 선택하려던 순간, 빠른 속도로 바싹 뒤쫓던 차량에 밀려서 길을 놓치고 말았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길도우미 안내 목소리가 마치 채찍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따가웠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순간 차 안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무턱대고 자유 여행에 도전한 게 그리 후회될 줄이야.

초행길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길을 간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라며 여겼다. 길도우미가 새로운 경로를 안내했다. 그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몸의 촉수를 곤두세웠다. 길도우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더니 다른 길이지만 목적지로 이어졌다. 제 궤도에 올라섰다는 안도감에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동서들도 숨통이 트였는지 담소를 이어갔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긴 터널이 나타났다. 눈에 불을 켜고 앞서가는 차를 따라 달리면서도 터널 벽에 부딪히는 차 소리에 다시 오금이 저렸다. 이 또한 처음 가는 길. 순간, 출렁다리를 걷는 것처럼 바짝 마른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동서들도 걱정이 되는지 차 안은 숨소리만 들릴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꿀꺽,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두 롤러코스터를 타는 심정이었으리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입꼬리에 힘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다 보니 이런 길도 가는구나!”

“형님, 대단해요.”

그 말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이 함께해서 든든했던 것일까. 된서리 내리던 밤처럼 시리던 마음이 봄 햇살을 만난 듯 따스해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처럼 막막했던 터널도 거의 지났는지, 멀리서 작은 빛이 흐릿하게 보였다. 점점 밝아지는 빛줄기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디어, 경주에 도착했다. 어스름에 내린 보슬비로 길에는 등굣길 우산처럼 늘어선 차들로 가득했다. 멀고도 힘든 길을 돌아온 탓인지, 울컥해졌다. 혼자였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동서가 다시 빵조각을 내 입에 넣어주곤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웃는다. 덩달아 나도 웃음이 쏟아진다. 이토록, 우리를 한 집안으로 이끌어주신 주님의 뜻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함께여서, 함께 할 이들이 있어 새삼 든든하다.

길 위에서,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생각하며 이들과의 다음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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