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사춘기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입니다. 얼마 전 아이가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빗다가 원형 탈모가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엔 손톱에 찍힌 것처럼 패여 보이고 크기도 작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 부위가 점점 커지고, 다른 부위 머리카락도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도 신경이 쓰이는지 머리를 만지면서 불안해합니다. 외모에 예민한 사춘기인지라 아이가 위축된 상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난다고 달랬지만 내심 걱정됩니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건지,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 증상이 나아질지,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허창훈(대한모발학회 부회장) 교수의 조언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빠지는 원형 탈모는 비정상적인 면역 반응으로 모발이 빠지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입니다. 면역 체계가 자신의 모발을 이물질로 인식해 비정상적인 면역 반응을 일으키고 머리카락이 만들어지는 모낭을 공격해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남성 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머리카락이 점차 가늘어지다 탈락하는 남성형 탈모와는 다른 질환입니다.
원형 탈모 초기에는 두피에 손발톱으로 찍은 듯 패여 머리카락이 빠져있습니다. 원형 탈모가 생긴 부위 주변 머리카락 50여개를 잡아 부드럽게 당겼을 때 10개 이상 빠지면 원형 탈모 병변으로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당 부위가 점점 동그란 원 모양으로 커지는 반점형 탈모가 여러 개 생깁니다. 여기서 더 진행하면 모발이 완전히 손실되는 전두 탈모, 눈썹 등 모든 체모가 완전히 손실되는 전신 탈모 등으로 악화할 수 있습니다. 원형 탈모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모낭이 돌이킬 수 없이 파괴돼 영구적인 탈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원형 탈모는 언제 어떻게 진행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질병입니다. 다만 원형 탈모 첫 발병 시점이 어릴수록 반복된 재발로 예후가 나빠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원형 탈모 환자의 40%는 20세 이전에 처음 발병하고, 80%는 40세 이전에 원형 탈모 증상을 경험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특히 첫 발병 시점이 20세 이전이라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머리카락, 눈썹 등이 모두 빠질 수 있어 지속적인 관찰을 통한 치료가 중요합니다. 원형 탈모였다가 다시 머리카락이 나더라도 20년 이내 원형 탈모 환자의 100%가 재발을 경험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원형 탈모는 자연 회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생 1년 미만으로 원형 탈모 부위가 1~2개 미만이라면 80%에서 자연회복될 수 있습니다. 대략 3개월 정도는 기다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원형 탈모가 ▶반복적으로 재발하거나 ▶탈모 범위가 넓거나 ▶어린 나이에 발병했다면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원형 탈모는 국소 스테로이드, 전신 스테로이드, 국소 면역요법, JAK 억제제 등으로 중증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치료합니다. 최근엔 원형 탈모의 병리 기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세분화된 치료적 접근이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국내에서도 중증 원형 탈모 치료에 12세 이상 청소년부터 처방이 가능한 JAK억제제 계열 치료제인 리트풀로가 시판 허가 받았습니다. 이전에도 중증 원형 탈모 치료에 JAK억제제 계열 치료제가 쓰였지만, 18세 이상 성인에서만 처방 가능했습니다. 리트풀로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중증 원형 탈모 치료 가능 범위를 넓혔다는 평가입니다.
리트풀로는 글로벌 임상 연구를 통해 성인 및 12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유의한 치료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리트풀로 치료군은 위약군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은 비율로 SALT(탈모 중증도 기준) 점수 20점 이하를 기록했습니다. 또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치료 유효성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며 중증 원형 탈모 환자들에게 유의미한 치료 혜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원형 탈모로 인한 스트레스 관리도 필요합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원형 탈모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면 원형 탈모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원형 탈모 환자의 23%는 첫 발병 당시 심리적 스트레스가 심했거나 발병 6개월 이내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배 정도 많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 갑작스럽게 발병한 원형 탈모로 머리카락이 빠지면 심리적으로 우울·불안해지고, 대인 관계를 불편해하고 학업·업무에도 집중하기 힘들어합니다. 원형 탈모 환자의 30%는 우울·불안 증상을 겪고 있으며,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우울·불안 장애를 보인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특히 원형 탈모가 발병한 시점이 어릴수록 분리불안, 불안장애, 사회공포증 등 주요 우울장애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가족 구성원 역시 아이의 원형 탈모로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원형탈모는 외적 변화로 심각한 스트레스가 동반될 수 있습니다. 심리적 불안감에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민간 요법을 시도하기 보다는 피부과 병의원을 찾아 대처하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 진료받을 때 묻지 못했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kwon.sunmi@joongang.co.kr)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닥터스 픽'에서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