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피부, 회색 돌변했다…32살 그녀 덮친 잔인한 진단

2025-03-25

서른 살 젊은 남성 한 분의 입원이 예고됐다. 그는 얼마 전 다른 병원에서 암을 진단받았고, ‘오진은 아닐까’ 하는 심정에 병원을 바꿔 재검사하려던 참이었다. 내게 주어진 업무는 그를 병동에서 첫 번째로 맞이해 입원 수속을 돕고 설명해 드리는 일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라서였을까. 다른 환자들을 맞이할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느껴졌다. 이른 나이에 암 선고를 받은 그의 지금 심정이 어떨지, 나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큰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처음이겠다 싶어 최대한 편하게 해주자는 마음으로 그를 맞을 준비를 했다.

‘정말 암 환자가 맞는 걸까?’

겉보기엔 누가 봐도 환자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혈색이 붉고, 건장한 청년이었다. 아직은 특별한 증상도 없는데 이미 폐와 간까지 전이가 의심된다는 검사 결과를 들고 왔으니, 나 또한 암 판정을 믿고 싶지 않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그의 모습이 너무 어색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혈압 측정하고 입원 생활 안내 도와드리려고 왔어요.”

내가 다가가자 그가 분주하게 침상 위에 올려놓았던 옷가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편히 혈압을 측정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배려처럼 느껴졌다. 한껏 긴장해서인지 움직임 하나하나가 굳어 있었고, 그런 그를 지켜보는 내내 안쓰러웠다. 그는 입술에 살짝 힘을 준 채,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이 주는 경계심과 자신이 어쩌면 정말 암환자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등이 뒤섞인 듯 오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하셔도 된다는 말을 최대한 다정하게 전했고, 그가 차분히 침대에 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병동 환경과 입원 생활 전반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낙상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도 의무적으로 시청해야 할 예방 동영상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병실 안에 감돌던 딱딱한 공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그나마 불편을 호소하는 증상은 간헐적인 변비와 잦은 소변 정도. 아직은 몸이 괜찮다고 느끼는 그의 마음 한쪽에는 “이게 정말 암일까?”라는 의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혈압을 측정하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문득, 몇 달 전 이 병동에서 마주했던 또 다른 젊은 환자가 떠올랐다. 서른두 살이던 그녀는 췌장암 조직검사를 위해 입원했다. 키가 크고 피부가 투명하리만큼 하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면 미소가 은은히 피어올랐다. 그녀는 늘 병실의 커튼을 완벽히 닫아놓았다. 마치 병원이라는 현실과 자신의 일상을 분리하고 싶은 듯한 그 작은 몸짓에서, 나는 그녀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며칠 후 그녀는 췌장암 4기라는 냉혹한 결과를 받았다. 결과를 듣고 나온 진료실 복도에서 그녀는 벽에 기대 흐느꼈다. 출장 간 남편 대신 혼자서 그 무거운 소식을 들어야 했던 날, 그녀는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간호사님, 제가 아이의 첫 졸업식은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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