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 지식 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친다는 뜻이다.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령이 느닷없이 ‘계몽령’으로 포장되어 궤변에 동원된 조어다. 대통령에게 국민은 여전히 계몽의 대상으로 보였을까. 국민은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깨어 있는데, 무엇을 가르치고 깨우치려 했단 말인지 모르겠다. 계엄으로 호소해야 알아듣는 수준의 국민도 아니고,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이 취할 방도가 계엄밖에 없는 것도 아니었다. 대국민 호소의 형식으로 무력을 동원해 자신의 정치력 부재만 드러냈다.
비상계엄으로 확실히 일깨워준 게 있다. 헌법의 중요성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헌법에 뭐가 쓰여 있는지 대략은 알지만, 비상계엄 관련 규정은 시민은 물론 법률가도 잘 모른다. 계엄권 발동은 평생 있을까 말까 한 대통령의 권한이라 법학도조차 헌법을 공부할 때 소홀히 했던 부분이다. 로스쿨 형법 강의 시간에 그냥 넘어간 내란죄의 성립 요건인 폭동의 개념이며 국헌 문란이 무엇인지 이제 다 안다.
현직 대통령의 내란 행위가 백 가지 해롭고도 무익했지만, 눈 씻고 찾아본다면 입법과제를 남긴 공 한 가지는 있다. 탄핵심판과 내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입법의 불비(不備)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현직 대통령이 내란죄를 범할 것이라고 입법자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쉽게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봉쇄할 줄이야, 피의자가 물리력을 동원해 체포를 저지하고 버틸 줄이야, 피의자 심문을 위한 출석을 거부할 줄이야. 법의 흠결이 입법자 탓은 아니다. 입법 당시에 상상치 못했던 극단적 사태를 벌인 자, 공권력을 무시하고 형사사법 시스템을 무력화한 자의 잘못이다. 법의 구멍을 메워야 할 입법과제가 있음을 깨우쳤다는 점에서 ‘계몽성’이지만, 치러야 할 피해와 대가와 후유증은 상상 초월이다. 대한민국이 완전한 민주주의 수준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전락했다는 외국의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작년 12·3 비상계엄 이후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법안 건수가 상당하다. 중복과 유사한 것을 묶어보면 계엄법 개정안, 국무회의 실질화 방안, 압수수색·체포 영장 집행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형법 개정안, 사면법 개정안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헌법 개정도 논의되고 있다. 헌법상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과 절차를 강화해야 하고,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는 것은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통령의 계엄선포권 행사에 대한 사전·사후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 등 계엄법 개정안이 도드라진다. 내란죄 또는 외환죄의 수사를 위해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나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때에는 제한 없이 영장 집행이 가능하도록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대통령이라도 피의자라면 출석요구나 소환조사에 불응할 수 없도록 하는 개정 규정도 눈에 띈다. 영장 집행 방해 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안, 소요죄의 법정형을 높이는 안,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느냐’는 궤변이 통하지 않도록 내란죄와 외환죄의 미수와 기수를 같게 처벌하는 안도 있다. 내란 또는 외환, 반란의 죄를 저지른 자는 임시석방, 사면·감형, 복권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법은 경험과 상식의 산물이며, 공정과 평등을 추구한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거나 예상되는 상황을 미리 상정해 법률을 만든다. 이제 입법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도, 발생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더라도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완벽하게 입법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논란이 많았던 수사와 기소의 주체, 각 주체 간의 관계와 권한 등 충돌되거나 규율하지 않은 부분도 이번 기회에 찾아내 ‘싹 다 정리해야’ 한다. 대선 국면이 펼쳐지더라도 국회가 해야 할 입법과제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