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불과 몇 년 만에 AI 기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 AI는 전문가나 특정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는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면, '챗GP'T 같은 서비스의 등장은 누구나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AI의 강력한 성능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정보 검색 방식의 변화는 물론, 콘텐츠 제작, 아이디어 발상, 업무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생성형 AI는 AI가 더 이상 특정 전문가 집단만의 도구가 아닌, 일반 대중의 삶 속으로 들어올 준비가 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생성형 AI가 AI의 문턱을 낮추었다면, 생활형 AI는 그 기술을 개인의 삶에 밀착시켜 진정한 '나만의 AI'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뤼튼에서 공개한 'AI 서포터' 개념은 이러한 생활형 AI의 비전을 잘 보여주는 예다.
뤼튼은 '사람은 모두 다른데 왜 다 똑같은 AI를 쓰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사용자의 성격, 취향, 관심사 등을 학습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상호작용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정보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는 등 '정서적인 교감'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형 AI의 핵심 기반 중 하나는 'EQ 레이어'로 제시된다. EQ 레이어는 이용자 개인의 특성과 정보, 장기 기억 등을 결합해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AI의 외형, 말투, 상호작용 방식을 구현하는 기술이라고 한다. 이는 AI를 딱딱한 도구가 아닌, 마치 영화 '그녀(Her)'의 사만다나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사용자와 정서적으로 친밀하면서도 개인의 필요에 맞춰 업무와 일상 활동을 돕는 조력자로 진화시키는 시도다. 1인 1AI 시대를 열겠다는 뤼튼의 비전은 이러한 개인 맞춤형 생활형 AI를 대한민국 5000만 국민 각자에게 보급하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생활형 AI는 단순히 기술적 편리함을 넘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가능성까지 열어 보이고 있다. 뤼튼이 발표한 'AI 이코노믹스' 비전은 사용자가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 AI 기능을 활용한 활동을 통해 직접적인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AI와 연계된 다양한 미션 수행이나 외부 광고 플랫폼 연동 등을 통해 '뤼튼 캐시'를 보상으로 제공하고 이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계획은 AI가 단순한 소비 도구를 넘어 사용자의 경제 활동에 기여하는 생산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도다.
이러한 생활형 AI 및 AI 이코노믹스 비전은 '한국형 딥시크'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방향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한국이 가진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와 빠르게 변화하는 사용자 트렌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단순히 기술 자체의 근원적인 깊이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실제 경험과 일상생활 전반과의 밀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AI 기술을 발전시키는 접근이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개인에게 최적화된 'AI 서포터' 개념과 사용자가 활동을 통해 직접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AI 경제 시스템'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특성과 니즈를 반영한 차별화된 시도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AI 기술이 소수 전문가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누구나 쉽게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AI 개발의 대중화'를 목표하며 모델 혹은 프레임워크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려는 움직임은 기술 딥다이빙과 생태계 확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한국 AI 기술 저변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네이버에서는 하이버클로바 X 시드(SEED) 모델을 공개했고, 뤼튼 역시 '에이전티카(Agentica)'와 '오토뷰(AutoView)'라는 오픈소스 프레임워크를 공개했다. 위와 같은 오픈소스 생태계를 통해 복잡한 AI 에이전트 개발 과정을 간소화하고 사용자인터페이스(UI) 개발까지 자동화해 숙련된 개발자뿐 아니라 AI 개발 입문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며, 이를 통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등에게 매우 유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생활형 AI 시대를 선도하고 한국형 딥시크 AI를 성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AI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규제 환경 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 및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 AI 기술 개발은 막대한 연구 개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영역이다. 일부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긍정적인 사례도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유망 스타트업들이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상용화 및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 부문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
둘째, AI 분야 핵심 인재의 양성 및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AI 경쟁력의 근원은 결국 우수한 인재이다. 대학, 연구소, 기업 간의 산학 협력을 강화해 실무 역량을 갖춘 AI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한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이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적 배려도 수반돼야 한다.
셋째,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연하고 혁신 친화적인 규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모델에 대한 법적, 제도적 검토 및 정비가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급변하는 AI 기술 환경 속에서 규제가 기술 혁신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안전하고 책임 있는 혁신을 촉진하는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
넷째, 글로벌 시장 진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 시장은 AI 기술을 검증하고 상용화하기에 좋은 테스트베드이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다. 현지 시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현지화 전략 수립, 해외 파트너 발굴 및 네트워킹 기회 제공, 국제 협력 프로그램 확대 등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생성형 AI 시대가 AI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이제 도래하는 생활형 AI 시대는 그 기술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어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생활형 AI 시대를 선도하고 '인간 중심의 AI'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잠재력을 만개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학계 등 각 분야의 긴밀한 협력 하에 과감한 투자와 인재 양성, 그리고 혁신을 포용하는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인 규제 환경 구축이 절실한 과제다. 이러한 노력들이 어우러진다면, 한국은 명실상부한 AI 강국으로서 전 세계 AI 산업을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이세영 뤼튼테크놀로지스 대표 noah@wrtn.io
〈필자〉2021년 뤼튼테크놀로지스를 창업, 대표직을 맡고 있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청소년학술대회(KSCY)를 설립 및 운영했다. 2023년 CES 혁신상을 수상하고, 세계경제포럼(WEF) 선정 테크놀로지 파이오니어(Technology Pioneers) 및 포브스 아시아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 30인'에 선정됐다. 2023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생성AI스타트업협회장(GAISA) 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