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받은 연구가 20여년 만에 4개, 경이로운 예쁜꼬마선충[BOOK]

2025-08-29

사람이 벌레라니

이준호 지음

이음

예쁜꼬마선충은 경이롭다. 때로는 연구자들을 위해 생물학의 수호성인이 맞춤 제작해준 동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투명해서 몸속을 관찰하기 좋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세포 내 현상도 직접 관찰한다. 체세포와 신경세포 개수가 언제나 똑같다. 예쁜꼬마선충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자웅동체의 체세포는 959개, 극소수인 수컷의 체세포는 1031개. 체세포 수에 포함되는 신경세포 수는 무조건 302개. 그 덕분에 수정란이 어떻게 세포분열을 거듭해서 어떤 체세포나 신경세포가 되는지 완전히 밝힐 수 있었다.

심지어 그 과정도 항상 똑같다.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들도 밝혀져 있다. 개체 별로 시냅스의 개수(7500개 내외)나 위치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전체적 패턴은 항상 같다고 한다. 예쁜꼬마선충은 게놈(유전자 배열)이 밝혀진 첫 번째 동물이자 커넥톰(신경세포 연결)이 규명된 첫 번째 동물의 영예를 차지한다. 유전자 수준부터 세포를 거쳐 개체 수준까지 갖가지 실험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20세기 유전학 연구를 연 초파리 실험은 1933년부터 금세기까지 6개의 노벨상을 배출했는데, 예쁜꼬마선충 실험에서는 2002년부터 불과 20여년 만에 4개의 노벨상이 나왔다.

길이 1mm에 지름 0.08 mm에 불과한 투명한 벌레가 상한 과일에 붙어서 꼬물거린다면 기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다행히 눈이 좋아야 알아볼 수 있고, 한국에선 자생하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예쁜”일까? 마치 사인 곡선을 그리는 것처럼 우아하게 몸통을 흔들어 이동한다고 해서 'C. elegans'라는 호칭이 붙었고, 이를 예쁜꼬마선충으로 옮겼다. 그래도 다른 많은 선충과 달리 예쁜꼬마선충은 기생생물이 아니라 독립영양 생물이다. 상한 과일에서 번식하는 박테리아를 잡아먹는다.

『사람이 벌레라니』는 비교적 짧은 책인데도 전반부에서 예쁜꼬마선충 연구의 맥락과 의의를 큰 그림으로 그려낸다. 덕분에 단편적으로 알려진 여러 이야기 조각이 서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다윈를 풍자한 캐리커처 제목과 니체의 글에서 따온 책 제목은 예쁜 꼬마선충 실험이 우리 안의 '벌레'들을 이해하는데 큰 실마리를 계속 드러내 준다는 뜻인 듯싶다. 물론 '벌레'는 유전자와 분자생물학 수준에서 논하는 말이다. 예쁜꼬마선충의 유전자 2만여개 중에 절반가량이 인간에게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후반부는 지은이와 제자들이 수행한 연구들이 어떤 의문과 동기로 시작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풀어낸다. 지은이는 국내의 예쁜꼬마선충연구를 초창기부터 함께해온 생물학자다. 성공한 연구뿐만 아니라 여러 이유로 중단한 사례들도 담담히 풀어낸다. 좌절과 포기가 때로는 십여년 후 새로운 성과의 자양분이 되는 이야기도 흥미롭고,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연구자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협력은 과학사회학도의 관심을 끌 것 같다.

한국인 독자가 슬며시 웃을 대목들도 있다. 예쁜꼬마선충을 7% 알코올 용액에 넣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취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연구진은 돌연변이를 유발시켜 30분이 지나도 거뜬한 개체들을 찾아내고, 그들은 ‘주당’이라고 부르고, 그런 변이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judang'에서 나온 'jud'로 명명했다. 우리말에서 유래된 몇 안 되는 유전자 이름의 하나다.

읽다 보면 302개 신경세포만으로 복잡한 행동을 할 뿐만 아니라 학습도 하고, ‘취향’도 갖는 이 경이로운 동물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진다. 다행히도 지은이의 제자들이 2017년에 펴낸 두꺼운 『벌레의 마음』이 있다. 문제는 새로운 연구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 친절한 약도가 장만되었으니 더 자세한 최신 지도를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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