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에 지더라도, 창조는 인간의 몫입니다."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전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43)이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공학과 특임교수로 임용된 그는 11일 첫 학기 수업을 하면서 AI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지난해 9월 유니스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학교 초청으로 알파고와 대국 등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특강을 하면서다. 특강 후 학교 측의 특임(특별임용) 교수직 제안을 받았다는 그는 "AI와의 대국 등 경험을 더 나누고 싶었고, 학생들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난 2월 '특임교수'로 임용된 그는 '과학자를 위한 보드게임 제작'이라는 과목을 맡게 됐다. 격주로 금요일에 6시간씩 워크숍 형태로 운영하는 강의다.
20여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은 단순히 게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전략적 사고와 인공지능 기술을 융합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그는 "학생들이 보드게임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논리력, 팀워크,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실제 게임으로 구현해보는 실용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수업은 실습 중심이다. 6시간 수업 중 2시간은 바둑 강의, 나머지 시간은 학생들이 조를 이뤄 규칙·승패 등이 있는 '부루마불' 게임과 같은 실제 보드게임을 제작한다. 이 교수는 이때 바둑의 전략적 요소 등을 학생들에게 조언한다. AI 알고리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게임 규칙에 적용하라는 추천도 한다. 그는 2019년 프로 바둑기사 은퇴 후 현재 보드게임 제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는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수를 계산해내는 데 능하지만, 인간은 직관과 감정을 바탕으로 예상치 못한 수를 둘 수 있다. 연산력과 분석력은 AI의 강점이지만, (보드게임 제작 같은) 창의성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6년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AI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왔다고 했다. "AI가 때로는 인간보다 더 창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당시 대국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고정관념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창의적인 수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 교수와 알파고 간의 대국은 알파고가 4승 1패로 승리했다.
그는 AI를 이제 협력의 파트너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AI에게 바둑에서 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AI는 바둑을 '창조'하진 못한다. 인간과 AI가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시대가 왔다. 이 속에서 인간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AI와 바둑을 두는 건 마치 사람이 스포츠카와 경주를 하는 기분"이라며 "그 차이를 극복할 순 없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공존하고 협력하느냐"라고 덧붙였다.
박종래 유니스트 총장은 "이 교수의 독창적인 경험이 캠퍼스 전반에 혁신을 향한 도전 정신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AI와 바둑의 융합 연구가 학생들의 과학적 사고력과 논리적 사고를 한층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유니스트 임기는 2028년 2월까지다.
한편 유니스트는 이날 "전공과 상관 없이 모든 학생이 AI 기본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AI 캠퍼스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