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전에도 10시간 냉동 기능이 유지되는 냉장고와 인도 전통 빵 ‘난’을 굽는 전자레인지.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가 14억 명이 넘는 세계 1위 인구 대국 인도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인도 사람보다 인도를 더 잘 파악하려는 현지화 전략은 머리가 아닌 발에서 나왔다. K가전이 인도에 첫발을 내디딘 지 올해로 30년, 낯선 땅에서 세계에서 가장 개척이 어렵다는 척박한 영업 환경을 극복하며 한 땀 한 땀 들인 정성은 신시장을 넘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며 ‘갠지스의 기적’을 불렀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인도 시장 진출 30여 년 만에 현지 가전 업계의 리더로 우뚝 섰다. LG전자는 세탁기와 에어컨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냉장고 부문을 이끌고 있다. 스마트폰에서도 삼성전자는 2023년 1위에 올랐다가 지난해 중국 기업의 물량 공세에 밀려 3위로 주춤했지만 여전히 판매량은 탄탄하다. 지난해 삼성전자 인도 법인의 매출액은 17조 490억 원, 순이익은 1조 4084억 원에 달했다. LG전자는 매출 3조 7910억 원, 순이익 3318억 원을 기록했다. 인도 시장이 양 사 가전 부문 주력으로 떠오른 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1995년과 1997년 인도에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30년 뒤 이 같은 성장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낯선 문화부터 이질적인 비즈니스 환경, 생활 수준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문제가 없었다.
첫 난관은 판매망 구축. 인도는 큰 시장이지만 동서와 남북의 길이가 각 3000㎞에 이르는 나라에서 전국에 흩어진 고객들에게 제품을 알리고 파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LG전자 인도법인은 현지 유통사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공동 비즈니스계획(JBP)’ 전략을 도입했다. 유통사의 비전과 계획에 발맞춰 사업 계획을 세우는 방식인데 특히 신뢰 구축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LG전자 관계자는 “인도인의 문화와 생활 트렌드에 걸맞게 52주 마케팅 캘린더를 짜줬다”면서 “LG가 단기 이익을 노리고 사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장기 비전을 갖고 함께 사업을 하려는 동반자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하자 삼성과 LG는 좀 더 인도 시장에 밀착할 수 있는 숙성 작업에 나섰다. 인도 소비자 맞춤형 특화 제품 개발이다. 대표적인 제품이 삼성전자의 투인원 컨버터블 냉장고다. 채식주의가 발달한 현지인들의 식생활에 발맞춰 2도어 냉장고의 냉동실을 냉장실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인기를 끌었다. 올해 출시한 신제품에는 영어를 포함해 인도 현지어 9종을 적용했다. 에어컨과 실링 팬을 함께 사용하는 맞춤 냉방 기능도 인도에 먼저 출시했다.

LG전자는 모기로 인한 뎅기 바이러스가 인도에서 기승을 부리는 점을 고려해 초음파로 모기를 쫓아내는 에어컨을 선보였다. 전력 수급이 불안정한 인도 가정집 사정을 고려해 전력이 끊겨도 냉장 7시간, 냉동 10시간을 버티는 냉장고도 내놓았다. 인공지능(AI) 모터 기술을 이용해 세탁물의 종류와 무게를 감지하는 기술로 인도 여성들이 일상복으로 입는 ‘사리’의 옷감을 관리해 주는 세탁기도 인기를 끌었다.
인도 진출 30년을 맞은 국내 기업들은 이제 새로운 인도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인도 가전 시장의 성장세가 30년 전보다는 못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위협하는 중국 기업의 추격은 인도에서도 끈질긴 형국이다. 삼성전자 인도법인 관계자는 “2015년 인도에서 처음 근무한 뒤 한국에 복귀했다 올해 4월 다시 인도로 왔는데 산업 지형이 변했다”면서 “당시 5대 스마트폰 업체가 삼성과 인도 기업들이었는데 지금은 인도 업체 대신 중국 기업들이 꿰차고 있다”고 전했다.
차별화의 열쇠는 고급화와 기업간거래(B2B)다. 삼성전자는 인도 내 갤럭시 스마트폰에 대한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가전과 스마트폰 간 연결성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스마트폰·가전 부문의 여타 경쟁자들과 달리 스마트폰과 가전 모두에서 훌륭한 라인업을 갖춘 삼성전자만의 장점을 극대화해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LG전자는 인도 현지 내 ‘베스트샵’ 확장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종합 가전 소매점에서는 LG전자의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진열 공간을 확보하거나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B2B 사업 규모도 늘릴 방침이다.
이달 찾은 인도 사우스이스트 델리의 LG전자 브랜드숍도 국내에서 1980년대 초반 팔리던 제품에서 최신 일체형 세탁건조기까지, 흡사 가전 박물관을 보는 듯 천차만별의 다양한 가격대와 기능을 가진 제품이 진열돼 있다. LG전자 인도법인 관계자는 “인도의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면 향후 인도 가구의 소득 수준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라며 “저가형과 고급형 시장을 모두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