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단타∙위스퍼링 통역에 트럼프 웃었다…李 '반文교사' 전략

2025-08-31

이재명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7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과 비교하는 이가 정치권에서 적지 않다. 두 회담 모두 상대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 동일하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과는 판이한 대화 전략을 구사했다는 평가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각) 50분간 생중계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먼저 트럼프의 모두발언(2분 50초)→이연향 미(美) 국무부 통역국장의 순차 통역(2분 12초)이 있고 나서 시작됐다. 눈에 띄었던 건 이 대통령이 트럼프와 달리 모두발언을 통으로 읊지 않았던 점이다. 문장을 끊어 말했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와 눈을 맞추면서 한두 문장 정도를 말하고 잠시 발언을 멈추면 조영민 대통령실 행정관이 이를 통역해 트럼프에게 하나씩 전달하는 식이었다.

▶이 대통령=“트럼프 대통령께서 오벌오피스(회담 장소)를 새로 꾸몄는데 황금색으로 보이는 게 정말 보기 좋다”

▶조 행정관=(통역)

▶이 대통령=“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변하고 있는 게 다우존스 지수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세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더라”

▶조 행정관=(통역)

▶이 대통령=“유럽·아시아·아프리카·중동 여러 곳에서 전쟁들이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로 휴전하고 평화가 찾아오고 있다. 대통령님처럼 평화에 관심을 갖고 실제 성과 낸 경우는 처음이다”

▶조 행정관=(통역)

이어 조 행정관이 “한반도에도 그 평화를 만들어주셔서 김정은과도 만나시고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하나 지어서 거기서 저도 골프 좀 칠 수 있게 해주시라”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통역하자 이윽고 트럼프의 만면엔 미소가 번졌다. 빌드업(build up) 방식의 칭찬이 먹혀든 대목이다.

이와 관련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모두발언이나 답변을 짧게 짧게 끊어 말하고, 이를 곧바로 통역하는 것으로 사전에 준비했다”며 “양국 간 언어가 다른 상황에서 통으로 발언하는 것보다 쪼개 말하는 게 교감하기에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2018년 5월 한·미 정상회담 때는 트럼프 모두발언(1분 10초)→이연향 국장의 순차통역(52초)→문 전 대통령 모두발언(1분 39초)→채경훈 청와대 행정관의 순차통역(1분 13초) 순으로 이뤄졌다. 문 전 대통령은 트럼프가 아닌 사실상 취재진을 상대로 정면을 응시하며 발언했고, 이를 트럼프는 알아듣지 못한 채 멀뚱히 앉아 있었다.

‘위스퍼링’(Whispering·속삭임) 통역이 이뤄진 점도 차별점이었다. 통상 자국 통역사는 자국 정상 말을 순차 통역하고, 상대국 통역사는 상대국 정상 말만 순차 통역하는 게 정상회담에서의 통역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엔 취재진과의 질답 과정에서 트럼프 발언을 조 행정관이 실시간 이 대통령에게 귀엣말로 동시통역해 전달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백악관에서 회담 상황은 회담만이 아니라 취재진과의 질답이 섞여 들어간다”며 “즉석 질문이 이뤄질 때는 상대 통역의 순차 통역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우리 측 통역이 트럼프의 말을 실시간으로 동시 통역해 이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두 방식을 적절히 섞어 이 대통령이 빨리 현장 상황을 이해하도록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회담 때는 이 위스퍼링 통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트럼프와 취재원과의 질답이 즉석에서 7분 30초간 이어지는 동안 동시통역이 전혀 이뤄지지 않자, 이 상황을 보다 못한 트럼프가 당시 채경훈 청와대 행정관에게 몸을 획 돌려 “Do you want to interpret that for him? Because he’s not hearing what we’re doing here”(문 전 대통령을 위해 통역을 좀 해주시지 않겠나. 우리가 여기서 뭘 말하고 있는지를 그가 전혀 듣질 못하고 있지 않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내내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

대북 접근법도 판이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달리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론을 부각했다. 문 전 대통령이 한국의 주도성을 강조했다면, 이 대통령은 트럼프를 적극 앞세운 것이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께서 피스 메이커(peace maker)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말할 땐 트럼프는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That’s good”(그거 좋네요)이라고 화답했다.

여권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의 접근법을 트럼프가 마뜩잖아했던 점을 상기하고 사실상 반면교사가 이뤄진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2018년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북미)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는데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지금 국면에서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나”는 취재진 질문에 문 전 대통령은 “(저의 역할은) 미국과 함께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통역을 들을 필요가 없겠다. 왜냐하면 전에 들은 내용일 게 확실하니까”라며 뼈 있는 농담을 던지며 회담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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