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심준보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사고 예방과 내부통제 강화를 목표로 '책무구조도' 도입을 본격 장려하면서 증권사들의 대응이 분주하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7월, 증권사에도 이른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 도입이 본격 시행된다. 최근 5년간(2020년 1월~2025년 1월) 금융투자업계에서 발생한 금융감독원 제재 공시만 261건, 10대 대형 증권사 제재 공시도 27건에 달하는 등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를 예방하고, 내부통제 강화를 꾀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강력한 조치다.
최근 업계에서 차액결제거래(CFD) 사태,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 신한투자증권 ETF(상장지수펀드) LP(유동성공급자) 부서의 1000억원대 손실 등 대형 금융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CEO(최고경영자)를 포함한 경영진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자산총액 5조원 또는 운용자산 20조원 이상인 대형 증권사들은 2025년 7월 2일까지, 그 외 증권사는 내년 7월 2일까지 CEO 및 임원들의 직책별 내부통제 책임을 상세히 기술한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을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라는 당근책을 제시했다. 올해 4월 11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하고 시범운영에 참여하는 증권사에는 컨설팅을 제공하고, 시범운영 기간 중에는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소속 임직원의 법령위반 등을 자체 적발 및 시정할 경우 제재를 감경 또는 면제하는 혜택도 부여한다.
이에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증권사는 신한투자증권이다. 2023년부터 내부통제 체계 강화를 위해 컨설팅을 진행해온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2월 책무구조도를 본격 도입한다는 목표다. 올해 2월 책무구조도를 본격 도입할 계획이다.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준법경영부를 신설해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선훈 신한투자증권 대표는 신년사를 통해 "잘못된 관행을 제거하고, 새롭고 건강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과 비장한 마음"이라며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의 대응이 빠른 모습이다. NH투자증권은 법무법인 김앤장과 협력해 내부통제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임원 교육 프로그램과 컨설팅을 병행하며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 중이다. 윤병운 NH투자증권 사장은 "2025년 금융권에 도입될 ‘책무구조도’ 등 강화된 내부통제 기준을 준수하며 고객과 임직원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윤 사장은 지나치게 영업을 저해하는 규제는 완화하겠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은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B증권도 딜로이트 안진·김앤장과 협력하여 내부통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를 운영 중이며, 이사회 산하에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해 책임 있는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하나증권은 관리부문은 외부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는 경영관리그룹을 신설, 각사업부별 긴밀한 협업체계를 구축해 영업 지원을 강화한다. 아울러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른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감사 조직은 본부로 격상했다.
IBK투자증권은 지난 20일 상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책무구조도를 언급했다. 회의에선 내부통제체계 고도화를 위한 추진 현황을 공유하는 시간이 진행됐으며 현재 금융투자업계와 IBK만의 특성화된 책무구조도 수립을 위해 컨설팅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메리츠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주요 대형 증권사들이 책무구조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국내 증권사 최초로 내부통제위원회를 설치했으며 현재 안정적인 제도 도입을 위해 외부 전문가와 협력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김성환 대표가 신년사를 통해 '360도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해 리스크 요인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다만 도입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책무구조도 취지를 감안하면 최상위 임원에게 책무를 배분해야 하나, 많은 조직을 담당하는 경우 관리 부담 우려가 있다"고 토로했다.
금감원은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제도 도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시범운영 기간 동안 책무구조도 작성 및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증권사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개선안을 제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