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 철퇴... 상장유지 기준 높이고, 상폐절차 빠르게

2025-01-21

"좀비기업, 불공정거래 온상... 적시 퇴출 必"

상폐요건 강화... 시총·매출액 단계적 확대

코스피 50억원→500억원... 코스닥도 100억원으로

심사 신속하게... 최대 개선기간 대폭 줄여

투자자 보호안 마련... 거래 지원·공시 강화

금융당국이 성장 가능성이 낮은 부실기업, 이른바 '좀비기업' 퇴출을 위해 칼을 뽑았다. 적시·적절한 저성과 기업 퇴출을 통한 국내 자본시장 밸류업을 꾀하는 모습이다. 특히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고, 절차에 걸리는 기간을 대폭 줄여 '효율화'에 나섰다는 평가다.

21일 오전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 콘퍼런스홀에서 '지속적인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한 IPO(기업공개)·상장 폐지 제도 개선 공동 세미나'가 진행됐다. 해당 세미나는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 등이 주최하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이 후원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금융당국, 유관기관, 학계, 업계 등에서 다수 관계자들이 참여해 상장폐지 제도 개선에 대해 논의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상장폐지 제도의 경우 시장 신뢰를 저해하는 기업들이 원활히 퇴출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시가총액, 매출액 등의 요건을 실효성 있는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높이고 상장폐지 심사 단계와 개선기간 부여 한도를 대폭 축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퇴출 확대에도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상장폐지 주식 거래를 지원하고 관련 공시를 늘리겠다"고 덧붙였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역시 상장폐지 기업 퇴출 방안 개선에 대한 의지를 표했다. 그는 "좀비기업은 불공정거래의 온상"이라며 "좀비기업이 적시에 퇴출될 수 있도록 하면서 투자자 신뢰를 회복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기업 회생 기회 부여, 투자자 보호 등에 초점을 둔 제도 운영으로 저성과 기업이 적절히 퇴출되지 못한다는 평가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실제로 평균 진입 기업 수 대비 퇴출 기업 수는 4분의 1에 불과했다. 최근 5개년간 진입 기업과 퇴출 기업의 연도별 추이는 ▲2020년 진입 92곳, 퇴출 24곳 ▲2021년 진입 112곳, 퇴출 31곳 ▲2022년 진입 90곳, 퇴출 29곳 ▲2023년 진입 112곳, 퇴출 19곳 ▲2024년 진입 99곳, 퇴출 31곳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는 해당 현상의 원인으로 '완화된 기준'과 '장기화되기 쉬운 절차'를 꼽았다. 상장폐지 대상 기업 선정 시 시가총액, 매출액 등 재무 요건과 감사 의견 미달 등 비재무 요건을 고려하는데, 재무 요건의 경우 15~20년 전과 같게 낮은 수준을 유지 중이고 비재무 요건의 경우 개선 기회를 장기적으로 부여한다는 것이다.

실제 퇴출에 걸리는 기간은 상당하다. 한국거래소 분석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상장폐지 기업이 폐지될 때까지 약 1~2년의 기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도 개선 기간을 길게 부여하고, 심의 역시 여러 단계로 나눠 진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절차 장기화로 인해 상장폐지 심사를 받으며 거래가 정지된 기업은 코스피 17곳, 코스닥 66곳 등 총 83곳으로 나타났다.

이에 이번 제도 개선은 기준 강화와 절차 효율화를 핵심으로 한다.

폐지 요건 중 코스피 시장 시가총액은 현행 50억원에서 ▲2026년 200억원 ▲2027년 300억원 ▲2028년 500억원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매출액도 현행 50억원에서 ▲2027년 100억원 ▲2028년 200억원 ▲2029년 300억원으로 늘릴 방침이다.

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역시 현행 40억원에서 ▲2026년 150억원 ▲2027년 200억원 ▲2028년 300억원으로 확대하고, 매출액도 현행 30억원에서 ▲2027년 50억원 ▲2028년 75억원 ▲2029년 100억원으로 늘린다.

한국거래소는 강화된 기준의 연착륙을 위해 단계적 조정은 물론, 완충장치도 도입할 예정이다. 성장 잠재력이 높지만 매출이 낮은 기업을 고려해 최소 시가총액 요건 충족 시 매출액 요건을 면제해 준다. 최소 시가총액 수준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각각 1000억원, 600억원 등이다.

비재무 요건의 경우 기존 감사 의견 미달 사유 발생 이후 다음 또는 다다음 사업연도 감사 의견이 나올 때까지 개선 기간을 부여하던 것을 한 해 단축한다. 제도 시행에 따라 감사 의견 미달 사유가 발생한 기업은 다음 사업연도 감사 의견 미달 시 즉시 상장폐지된다. 단, 회생, 워크아웃 기업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1년의 추가 개선기간이 주어진다.

그밖에 코스피 분할 재상장 시 존속법인의 최소 요건 미충족을 실질 심사 사유로 추가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존속법인이 부실해지는 구조의 분할 재상장을 미연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코스피, 코스닥 시장의 최대 개선기간은 형식 심사의 경우 각각 2년, 1년이며 실질 심사의 경우 각각 4년, 2년으로 긴 편이다. 개선기간과 별개로 최소 20일에서 최대 30일까지의 위원회 심의 기간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 속개 제도를 통해 추가 개선기간을 부여키도 한다.

주요국은 이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 뉴욕거래소(NYSE)는 최대 18개월의 개선기간을, 나스닥(NASDAQ)은 최대 12개월의 기간을 제공한다. 일본도 12개월을, 홍콩도 18개월, 싱가포르 역시 12개월 등의 비교적 짧은 개선기간을 부여한다.

한국거래소는 코스피의 경우 형식 심사는 최대 1년, 실질 심사는 최대 2년으로 대폭 줄였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실질 심사를 기존 3심에서 2심으로, 최대 2년에서 최대 1.5년으로 줄였다.

단, 개선계획 임박 등 규정에 명시된 예외 사유 발생 시 심의 단계별 3개월이 추가 허용된다.

이미현 한국거래소 상무는 "해외 거래소에서 부여되고 있는 개선기간과의 정합성을 맞추려고 했다"며 "사실상 개선기간 부여와 동일 효과를 지녔던 속개 제도 역시 제한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식, 실질 심사 사유가 동시 발생하는 경우 두 가지 심사를 병행한다고도 전했다. 만약 하나라도 폐지 사유에 해당할 경우 최종 상장폐지 처리된다.

이미현 상무는 "상장폐지 요건 강화를 통한 퇴출 확대는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이슈"라며 "이에 투자자 보호를 위한 보안 방안도 함께 마련했다"고 말했다.

우선 금융투자협회의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인 'K-OTC'를 활용해 상장폐지 주식의 거래 기반을 개선한다. 상장폐지기업부를 신설해 폐지기업 거래를 6개월 동안 지원할 계획이다.

이후 협회가 적정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요건 등을 검토한 뒤 등록·지정기업부로 연계해 지원을 지속할 가능성도 있다.

공시 강화에도 무게를 뒀다. 그간 상장폐지 사유 발생으로 인한 거래정지 기간 관련 정보 공시가 부족해 투자자들의 알 권리가 훼손된다는 평가가 있어 왔다.

기존에는 한국거래소가 심사 절차 진행 경과에 대해서만 공시했으나, 앞으로는 기업이 제출한 개선계획의 주요 내용을 공시한다. 단, 인수합병 등과 같은 대외 공개가 부적절한 경영상 비밀사항은 제외된다.

이 상무는 "상장폐지 재무 요건 중 시가총액은 2026년 1월부터, 매출액은 2027년 1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 기업 충격을 완화할 것"이라며 "그밖의 개선 사항은 금융위원회 등을 통한 상장 규정 개정 후 올해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선기간 단축, 형식심사와 실질심사 병행 등 절차적 내용은 세칙을 개정해 오는 3월부터 실시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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