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유럽 시각 오후 6시경. 벨기에 대학 강의실에서 나오는 길. 기숙사에 사는 유럽인 룸메이트 친구로부터 급박한 메시지를 받았다. “재원아. 괜찮아? 너희 가족은? 너희 친구는?” 메시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뭘 묻는지 되물었다. 친구는 나에게 한국의 쿠데타 소식을 알렸다. 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마치 북한 정권이 붕괴하나 생각하며, 북한에 소란이 있냐고 다시 물었지만 그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South’, 남쪽이라는 단어였다.
정신을 놓은 채 기숙사로 돌아가 가방을 던지고 뉴스 시청을 시작할 무렵, 두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MZ세대 대표 소셜미디어 틱톡과 인스타그램의 모든 화면에는 한국 내란 영상으로 가득차 있었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금지하고, 종북좌익세력 및 의사들을 처단한다는 포고령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평소 K팝을 사랑하는 한류팬들은 12월3일 온종일 어떤 아이돌 소식보다 내란 뉴스를 지켜보았다. 친구 중 하나가 물었다. 혹시 한국이 이제 북한처럼 되는 거냐고. 도시를 군인이 점령하고, 지도자가 정치인과 시민을 숙청하는 나라가 되는 거냐고. 너희 가족이나 친구들도 죽는 거 아니냐고. 한국어로 된 뉴스를 읽을 수 없는 그들은 한국의 상황을 우리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정도로 우려했다. 그러고는 한국어 공부도 중단하고 한국 대학 교환학생 버킷리스트도 포기할지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친구도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혹시 미얀마 쿠데타처럼 군부가 시민들을 대거 학살하는 거 아니냐고. 윤석열은 누구냐고, 그럴 만한 사람이냐고. 바닥으로 떨어진 한국에 대한 신뢰와 비참한 상상의 포화 속 나는 어떤 우려도 해명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뉴스 화면만 바라보았다.
나흘이 더 지난 12월7일. 한류를 사랑하는 유럽 사람들은 온 한국인이 국회를 바라보며 토요일을 보냈듯 온종일 한국 정치뉴스를 찾아보며, 탄핵 부결 결과를 목도했다. 친구들이 말했다. 재원. 어떡하면 좋냐고. 네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고. 부디 모든 한국 국민이 안전하길 바라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국이 붕괴될 것 같다고.
국민의힘이 한가로이 탄핵 트라우마를 운운하는 사이,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시민은 지난 한 주간 내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이들이 지난 한 주간 시청한 한국 영상은 로제와 브루노마스의 호흡이 아니라 국회에 군 헬기가 착륙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군대가 습격하고, 한국 군인이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며, 국회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가는 끔찍한 국가 폭력 장면이었다. 총칼을 겨눈 군인의 사진을 목격한 내 친구들은 한국 여행을 꺼리고, 한국어 학습마저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아무리 한국 문화를 사랑한들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국가에 목숨 걸고 방문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국정을 그 누가 질서 있는 퇴진으로 이해할까. 세계시민의 시각에서 현재 한국은 위험한 국가다. 대통령은 끄떡없고, 여당은 실권까지 잡았다. 정부가 뭐라고 포장하든 세계 속 한국은 내란 진행 중인 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