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강요, 복장 단속… 상명하복 문화에 멍드는 국립초 교사들

2024-06-26

학교 직장내 괴롭힘 개선 목소리

“매일 밤 11시 다 돼서야 퇴근”

경대부초 교사 갑질 폭로 파장

군대 못지않게 위계질서 엄격

선배 퇴근 전까지 집 못 가거나

교장 성과급 부족분 메꾸기도

승진 체계 ·교감추천권 원인 꼽혀

교원단체 “부당 문화 대책 필요”

“1년차 교사는 교무실에 출입하려면 2~3년차 교사에게 먼저 보고해야 했다.”

“남자 교사는 넥타이가 필수였는데, 1년차는 흰색 와이셔츠와 단색 넥타이만 할 수 있었다. 셔츠에 줄무늬가 들어가면 폭언을 들었다.”

현직 초등교사들이 전한 국립초등학교의 ‘군기 문화’다. 최근 경북대사범대부설초(경대부초)의 한 교사가 쓴 갑질 폭로 글이 퍼지면서 국립초에 만연한 조직적인 갑질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국립초에서 근무했던 교사들은 ‘군대 못지않은 수직적인 분위기에 고통받았다’고 호소했다.

26일 대구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경대부초 1년 차 교사 A씨는 최근 같은 학교 교사들에게 ‘불법 감금과 갑질을 멈춰달라’는 편지를 썼다. A4 용지 6장 분량의 글에는 A씨가 올해 2월 발령 뒤 넉 달여간 겪은 사례들이 빼곡하게 적혔다.

그는 “모든 교사가 퇴근한 뒤 퇴근할 수 있어서 매일 밤 11시쯤 퇴근했다”며 “늦게 퇴근하는 교사에게 언제 가는지 물어봤다가 혼나서 언제 퇴근할지도 알 수 없었다. 몸이 아픈 날에도 보건실에 있다가 가장 늦게 퇴근했다”고 썼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나와 모든 교실 문을 열고, 각 반에 택배를 배달하는 등 각종 잡일을 도맡아 했다며 “노예처럼 부리는 부당한 갑질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해당 글이 교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지며 논란이 되자 경북대는 감사에 들어갔다.

교직 사회에선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립초의 부당한 군기 문화는 경대부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립초는 사범대·교대 부설초로 전국에 17개교가 있다. 교육 질이 높아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교사 사이에서는 ‘빡빡한’ 위계질서로 유명하다. 국립초 근무 경험이 있는 교사들은 경대부초처럼 선배가 퇴근하고 난 뒤 퇴근하거나, 출근 복장을 강요당하는 등 통제가 엄격했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 B씨는 “연차가 군대 계급과 비슷하다. 저연차 때 교무실에 갈 때 덜덜 떨면서 갔다”며 “교장은 왕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동료 교사의 부친상 빈소에 갔을 때 교장이 오자 모든 교사가 서서 두 줄로 길을 만들어주기도 했다”며 “아이들에겐 최상의 학교였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교사의 3분의 1이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교사는 “교사 성과급으로 교장 성과급 부족분을 메웠다”고 전했다.

국립초에 유독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는 것은 국립초 근무가 ‘승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교사는 “승진 시 연구점수가 결정적인데 국립초 근무 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들어가기 힘든 곳인 만큼 근무자들은 부당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교감한테 밉보이면 평가를 잘 받을 수 없어 다들 참았다”고 말했다.

국립초에 있는 ‘교감 추천권’도 문제의 원인으로 꼽힌다. 국립초 교장이 매년 1∼2명의 교감 추천권을 행사하다 보니 학교 관리자들이 절대적인 권력자가 되는 구조란 것이다. 한 교사는 “국립초 교사는 대부분 대학 시절부터 선후배여서 조직 문화가 폐쇄적”이라며 “튀는 행동을 하면 교직 생활 내내 힘들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교원단체는 이번 기회에 부당한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보미 대구교사노조 위원장은 “국립초 근무가 승진 ‘패스트 트랙’ 역할을 해 여러 적폐행위가 묵인된다”며 “신고가 들어가도 주변 교사들이 부담을 느껴 잘 도와주지 않고, 교육청은 증거 불충분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대구에서 교사 갑질 신고가 18건 들어갔지만 모두 갑질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위원장은 “외부기관에서 감사하거나 교사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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