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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범 LG가 3세 구본웅(영어이름 Brian Koo)이 한국에 세계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고 밝힌 가운데 그의 이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본웅은 LG그룹 창립자인 고(故)구인회의 동생 고(故)구태회의 손자다. LS그룹 초대 회장을 지낸 고(故) 구자홍의 외아들로 LS그룹의 직계가족이지만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왔다.
구본웅은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후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했다. 2011년, 그는 ‘포메이션8(Formation 8)’을 공동 창업하며 투자자로서 첫 발을 내디뎠고, 이곳에서 테슬라, 팔란티어(Palantir) 같은 성공적인 투자 사례를 남겼다.
하지만 공동 창업자들과의 내부 갈등으로 포메이션8이 해체되었고, 구본웅은 2015년 독립해 ‘포메이션 그룹’을 설립했다.
포메이션 그룹은 첫 번째 펀드에서 3억 5,400만 달러(약 4,700억 원)를 유치하며 출발이 순조로웠지만 이후 연속적인 투자 실패로 2022년 결국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당시 내부 직원이 "예상된 결과였다"고 인터뷰 하며 포메이션 그룹의 무리한 투자와 경영진의 판단 미스가 오랜 시간 적재되어 왔음을 짐작케 했다. 포메이션 그룹은 이후 2023년 5월 3일 최종적으로 모든 절차가 종결되며 완전히 해체됐다.
구본웅의 잇따른 투자 실패, ‘좋은 돈을 나쁜 곳에’
포메이션그룹의 투자 리스트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유망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수익성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이바오토메이션(Eva Automation), 옐로모바일(Yello Mobile), 어니스트비(HonestBee)가 있다.
이바오토메이션은 페이스북 및 유튜브 CFO 출신 기디언 유(Gideon Yu)가 설립한 오디오 스타트업으로, 포메이션그룹은 여기에 9,000만 달러(약 1,200억 원)를 투자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특히 어니스트비는 포메이션그룹에 경영난을 가져온 결정적인 패착으로 꼽힌다. 어니스트비는 싱가포르의 온라인 식료품 배달 서비스로, 구본웅은 이 회사를 동남아시아 전자상거래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그는 수차례 자금을 추가 투입했으나, CEO가 횡령 혐의로 기소되고 회사 자체도 파산했다. 어니스트비의 부채 규모는 최소 2억7700만 싱가포르 달러(약 2420억원)에 달했으며 이 중 포메이션그룹과 구본웅 개인 채권이 약 6,000만 달러(65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구본웅은 작년 12월에는 옐로모바일 이상혁 대표와 공모해 500만 달러를 빼돌린 혐의로 BF랩스로부터 피소되기도 했다.
옐로모바일은 2012년 설립된 한국의 모바일 플랫폼 기업으로, 다양한 스타트업을 인수해 반짝 성장했다. 구본웅의 포메이션그룹은 옐로모바일에 5,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지만 재무 구조의 불투명성과 부채 증가로 인해 여러 소송에 직면하면서 결국 회사가 해체됐고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또한 포메이션그룹은 LS그룹 계열사에서 5,300만 달러(약 700억 원)를 차입했지만 이후 유의미한 수익을 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LS그룹은 이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법적 중재 절차를 개시하며 가족 간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 설레게 한 세계 최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 실체 있을까
이에 19일 언론을 뜨겁게 달군 구본웅의 세계 최대규모의 AI센터 구축 발표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8일(현지시각) 구본웅과 BADR 인베스트먼트 설립자이자 CEO인 아민 바드르엘딘이 합작 설립한 '스톡팜로드'(Stock Farm Road) 투자 그룹이 한국에 3기가와트, 50조 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소식에 대해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본 뿐 아니라 기반 설비, 토지거래 등 전초 작업이 대대적으로 들어간다.
구본웅이 발표한 3기가와트의 데이터센터는 단일 프로젝트로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 규모는 미국에서 오픈AI와 소프트뱅크가 추진 중인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의 하나로 텍사스에 건설되는 데이터 센터의 약 세 배에 달한다.
1기가와트가 10만 가구가 한 달동안 생활할 수 있는 전력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 규모를 체감해볼 수 있다.
또한 데이터센터의 경우 ESS(에너지저장관리시스템)이 대량으로 들어간다. 막대한 전력 소모가 들어가는 데이터센터 특성 상,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전기료를 최대한 절약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대표적인 ESS 업체 관계자들과의 통화에서도 해당 내용을 사전에 소문으로라도 들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 확인됐다. 이 같은 대형 프로젝트 소식에 대해 국내 업계에 귀뜸이 있기도 전에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먼저 보도가 난 것이다.
또한 센터 구축 지역으로 점쳐지고 있는 전라남도 신성장사업과와의 취재에서 관계자는 "현재 협의를 진행 중인 내용으로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며 "내부 논의를 거치고 있고 현재 보도된 연초 공사 착공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가 국내에 구축된다면 한국은 AI 데이터 허브로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구본웅씨가 밝힌 것처럼 올해 초에 착공해 2028년까지 센터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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