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2월,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떠난 그들의 이야기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이면에 존재하는 복지 사각지대를 드러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재명 정부가 빈곤층 제로 사회를 목표로 한 구체적인 복지 개혁안을 내놓았다. 핵심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사실상 폐지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선제적 복지 체계 구축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
27일 보건복지부와 국정기획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장벽으로 지적돼 온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소득이나 재산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더라도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로, 복지 사각지대의 원인으로 꼽혀 왔다.
정부는 2027년까지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할 방침이다. 고소득·고재산 부양의무자가 있을 경우에만 수급을 제한하는 예외 조항도 없애, 앞으로는 본인 가구의 상황만으로 지원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의료급여는 2026년까지 ‘부양비’ 제도를 폐지하고,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완화해 더 많은 국민이 의료 안전망에 포함되도록 할 계획이다.
AI 활용한 예측 복지 체계 도입
정부는 신청을 기다리는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위기가구를 먼저 찾아내는 능동적 복지 시스템을 추진한다. 단전·단수·통신비 연체 정보뿐 아니라 금융, 채무, 의료 데이터까지 종합 분석해 위기가구를 정밀하게 예측한다.
발굴된 대상에게는 AI 상담사가 1차 상담을 진행하고, 복지멤버십을 통해 소득·재산 변동을 반영해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안내한다. 이는 위기가구 발굴뿐 아니라 급여 적정성 판정, 소득재산 조사 등 행정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혁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재정 부담과 일하는 복지의 과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와 급여 확대는 재정 부담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의료급여 수급자가 늘어나면 장기 입원 등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사회적 입원 관리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
또한 기준 중위소득 대비 생계급여 선정 기준을 2030년까지 35%로 상향하는 과정에서 근로 의욕 저하, 이른바 ‘빈곤의 덫’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정부는 자활 프로그램과 자활기업 창업 지원 확대 등 ‘일하는 복지’를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술과 공동체의 조화 필요
AI가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은둔형 빈곤층이나 사회적 고립 가구처럼 데이터로 포착되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남을 수 있다. 결국 첨단 기술과 함께 지역 공동체의 인적 안전망이 조화를 이뤄야만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