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돈 풀 땐 꼭 '재정 건전화 복귀 계획' 있어야" 獨연방은행 총재

2025-12-07

“대규모 재정 지출 뒤에는 반드시 재정 건전화로의 명확한 ‘복귀 계획’이 있어야 한다.”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요하임 나겔(59) 총재는 지난 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에서 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겔 총재는 한은 초청으로 방한해 이창용 한은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등을 만났다. 그는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을 겸하고 있는데, 2027년 임기가 끝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의 후임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그런 나겔 총재가 재정 건전성을 화두로 꺼냈다.

독일 정부가 올해 3월 향후 인프라 투자에 5000억 유로(약 859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국방비는 사실상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내용의 대규모 재정 패키지를 내놨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의 구조적 재정적자 비율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0.35%로 제한하는 헌법상 ‘부채 브레이크’를 완화하는 조치다.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경기 둔화가 이어지자 내놓은 대책이다.

재정 확대와 재정 건전성의 균형을 찾기가 어려운데.

“독일 정부의 재정 패키지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이에 최근 분데스방크는 ‘부채 브레이크 2.0’을 제안했다. 이대로면 (2040년에)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90%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2029년 이후 유럽연합(EU)의 재정준칙(GDP 대비 60%)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안들을 담았다. 독일은 유럽에서 ‘안정의 닻(Stability anchor)’으로 인식되고 있기에, 독일이 재정 정책을 건전화하면 다른 국가들도 금리 곡선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한국의 새 정부도 확장 재정을 하고 있는데, 조언을 한다면.

“모든 것은 향후 몇 년 동안 경제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달려 있다. 경제가 현재 예측보다 조금 더 잘 돌아간다면 건전화 과정은 더 쉬워질 것이다. 중기적 관점에서 성장률을 더 높일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이런 투자가 뒷받침돼야 세수가 증가하고 실업자 등에 대한 지출이 줄어든다.”

ECB 위원으로서 통화 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물가 안정은 경제 성장의 조건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부당한 침략 전쟁 이후, 2022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10%를 넘었다. 이를 잡기 위해 10차례 금리를 인상했다. 이런 명확한 신호를 준 후 금리를 8차례 낮출 수 있었고, 이제는 목표치(2%)에 근접해있다.”

독일의 경제 상황은 어떤가.

“독일은 전체 유럽을 대변하는 표본과 같다. 팬데믹 이후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이 혼재돼 있다. 러시아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너무 올랐고, 올해 초 미국 행정부와 관세 분쟁이 있었다. 정부가 구조적 문제와 경기 회복을 위한 대규모의 재정 패키지를 내놨고, 일부는 내년에 가시화된다. 올해는 약간의 침체, 혹은 0% 경제성장률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지만 내년에는 1%에 가까워질 것이다. 특별히 좋지는 않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낫다.”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 패권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국도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가 아니라 ‘자산(asset)’이다.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투기성 자산군으로 본다. 대부분 미국 달러로 표시되고 미 국채에 연동돼있어 추가적인 달러 의존도를 더 키우는 위험이 있다. 미 국채 가격이 급락(국채 금리는 상승)하면, 심각한 문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은행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의 유동성을 공급한다. 덜 규제된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서 더 규제된 은행 시장으로 위험이 파급될 수 있다. 발행자들이 규제시스템 밖인 ‘외딴 섬’(조세회피처) 등에 있는 경우도 많다. 강력한 규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유로(CBDC)의 차별점은.

“CBDC는 현금의 디지털 쌍둥이이자, 공공재다. 유럽은 결제 환경이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뿐 아니라, 비자ㆍ마스터카드, 애플ㆍ구글페이 등 미국 회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2~3년 안에 도매ㆍ소매용 솔루션, 디지털 유로를 갖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미국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유럽을 더 독립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의 일부로, 매우 중요하다.”

독일과 한국이 겪고 있는 고령화, 노동력 부족의 해법은.

“여성의 근로 확대와 인공지능(AI) 등 기술 활용, 이민 확대를 꼽을 수 있다. 많은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보육 정책이나 세제 혜택 등이 중요한데 한계가 있다. AI 기술도 어느 정도 격차를 메울 수 있지만, 이 또한 제한적이다. 나는 이민정책을 매우 지지한다.”

이민자에 대한 편견과 저항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장애물 중 하나는 언어인데, 분데스방크의 한 부서에서는 공식 언어인 독일어를 포기하고 영어로 말한다. AI 기술도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민자가 국가의 부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사고방식의 전환은 어렵지만, 이것은 마라톤과 같은 일이다.”

한국에서는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높이려는 움직임이 있다.

“독일의 정년은 67세로 한국보다는 약간 더 높다. 정년연장은 기대 수명과 연결돼야 한다. 독일 남성의 기대 수명은 79세, 여성은 83세다. 독일 시나리오에선 69세를 적절한 정년 연령으로 본다. 더 오래 일하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다. 세대 간 문제이기도 한데, 젊은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오래 일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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