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의무와 증인선서 거부

2024-06-30

모든 공무원은 임용되어 임명장을 받을 때 소속 기관의 장 앞에서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한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봉사자라는 말이다.

시민들은 군복무 중 사망한 군인이 있다면, 지휘하거나 조사했던 공무원(군인)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민의 봉사자로서 책임을 다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데 현실의 공무원들은, 책임은 철저히 외면하고 증언은 회피하기에 바쁘다. 작전 지시를 한 사람은 지도만 했을 뿐이라고 말장난을 하고, 작전 이행을 하다 죽은 병사와 가족들만 억울하다.

지난 6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가 진행됐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었는데 채 상병 사망의 책임자이자 수사 외압 관여자로 지목된 이들이 청문회장에 나와 선서나 증언을 거부했다. 이종섭 전 국방장관, 신범철 전 국방차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선서를 거부했고,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은 거의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이들은 수십년 동안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왔으나 한 병사의 죽음에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다. 형사소송법 148조 증언거부 조항에 기대어 공직자의 공적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내년이면 입대할 아들을 둔 나에게 등골이 서늘한 장면이었다.

정작 항명죄로 재판받고 있는 박정훈 대령은 모든 증언과 진술이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지만 증인 선서를 했다. 기가 막힌 장면이다. 공직자에 대해서는 증언 거부를 엄격히 제한하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증언감정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선서 또는 증언이나 감정을 거부한 증인이나 감정인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1000만~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고발해야 한다는 의무조항도 두고 있다.

처벌 가능성에도 선서를 거부한 것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증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법에 다소 위반되더라도 더 큰 진실을 감추어야 하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윗선의 심기인지, 더 큰 처벌 회피인지, 아니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인지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공직의 책임감은 개인의 영달을 넘어서지 못한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들에게 사실을 고해야 할 공직자 맞나. 국가의 녹봉을 받으면서, 지금 그게 고위직까지 올라와서 뭘 하는 건가”라며 책상을 치면서 분노했다. 수많은 시민이 같은 감정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지휘관의 면피성 발언도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임성근 전 사단장은 수색 지시 여부에 대해 “저는 작전지도를 했지, 지시를 한 것이 아니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겼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 것이다. 군에서 작전지도와 지시는 애초에 구분이 불가능하다. 이용민 전 대대장의 증언과 여러 증거를 보면, 임성근 전 사단장의 무리한 지시로 이 모든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밝혀진 사실이 있다면 대통령실 참모와 국방부의 무사안일주의이다. 관료들은 잘못된 결론이 발생하면 복지부동한다. 역설적으로 이런 모습이 수사를 꼬이게 만든 핵심 책임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언론에서 김건희 여사와 임성근 전 사단장의 관계를 주목하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 곧 채 상병 1주기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박정훈 대령의 한마디가 가슴을 때린다. “한 개인이 최고 권력을 상대로 이렇게 버틴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는 강직한 해병대 수사관의 절규에 함께 연대해야 한다. 그것이 채 상병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는 길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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