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가 삼킨 세계사
데이비드 기빈스 지음
이승훈 옮김
다산초당
인류가 언제부터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영국 남부의 항구도시 도버에서 발견된 난파선의 잔해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도버 보트’는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인 기원전 16세기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미뤄 볼 때 인류는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배를 이용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선사시대 이래로 지구의 바다와 호수에는 도버 보트처럼 확인되거나 기록된 난파선만 25만 척이나 된다. 많게는 300만 척이 가라앉았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 최고의 수중고고학자인 데이비드 기빈스가 지은 『바다가 삼킨 세계사』는 그 많은 난파선들 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12척에 얽힌 스토리를 엮은 독창적인 책이다. 기빈스는 12척 중 절반 이상의 난파선을 직접 발굴하거나 잠수해서 살펴봤다. 이 책에는 단순히 난파선의 유물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각종 역사와 문화가 풍성하게 녹아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리와 주석을 싣고 영불해협을 건넌 것으로 보이는 도버 보트 이야기에는 고대 선박 건조 방법부터 청동기 문명의 특징, 해상 교역 등 다양한 지적 탐험기가 휘황찬란하게 펼쳐진다. 튀르키예 서부 해안 울루부룬에서는 도버 보트보다 약 200년 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난파선이 발굴됐다. 이 배에선 기원전 14세기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의붓어머니인 네페르티티의 금제 스카라베 등이 발견됐다. 울루부룬호를 통해 당시의 ‘영웅 시대’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와 이슬람 황금기, 바이킹시대, 대항해시대, 산업혁명을 거쳐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바다 곳곳에서 난파된 선박과 그 발굴에 얽힌 새롭고도 신선한 역사 해석이 한아름 담겨 있다. 로마의 안과의사, 중국의 상인들, 헨리 8세의 궁수 등 정통 역사책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일반인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바다는 과거 존재를 담은 가장 위대한 문서”라고 했다. 이 말이 딱 들어맞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