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로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정세를 뒤흔든 지 꽤 됐다. 그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각국에 내민 선물 청구서는 노골적이었다.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우크라이나 광물, 계란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각국은 (좋게 말해) 거래의, (솔직히 말해) 선물을 경쟁적으로 내밀기 시작했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세율 25% ‘관세 폭탄’을 받아든 한국도 선물 건넬 차례를 기다리는 신세다. 굴욕적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트럼프가 한국에 원한다고 밝힌 선물 리스트는 현재까지 2개다. 조선업(군함)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1월 7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구애했다. 지난달 4일에는 “알래스카에 세계 최대 규모 중 하나인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며 “일본, 한국과 다른 나라가 수조 달러씩 투자하며 우리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에게 끝내 선물을 내어주더라도, 요모조모 따져 적절한 값을 치러야 한다. 먼저 조선업. 트럼프가 원한 ‘군함’과 일반 상선은 제작 과정부터 크게 다르다. 군함은 좁은 배에 각종 무기를 넣어야 해 상선보다 건조 난도가 훨씬 높다. 해군이 감독하는 ‘극한의 테스트’도 거쳐야 한다. 여름철 태풍에 맞춰 시범 운전하는 식이다. 건조 기간이 상선은 3년 이상, 군함은 7년 이상 걸리는 이유다.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도 만만치 않다. 1년 내내 땅이 얼어있는 영구 동토(凍土)에 1300㎞ 길이 가스관을 놓는 사업이다. 가스관을 놓는 데 성공하더라도 LNG선이 오갈 바닷길이 악조건이다. 북극 유빙(流氷)이 떠다니는 경우가 많아서다. 역대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킨 ‘엑손 발데스호’가 1989년 여기서 침몰했다. 알래스카 북부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한 건 1960년대다. 6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개발이 지지부진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은 제조업 실력에 묻혀서 그렇지 거래의 기술도 뛰어난 나라다. 고려 시대에 이미 청자와 인삼을 중국·일본을 넘어 아랍까지 수출한 ‘개성상인’의 후예다. 알래스카에서 냉장고, 아프리카에서 난로를 파는 ‘상사맨’이 한국 경제를 이끌던 시절도 있었다. 불굴의 한국인이 여태껏 하지 못한(안 한) 사업인데, 숨 한 번 고르고 침착하게 계산기 두드려봐서 나쁠 게 없다. 당연하지만 선물을 주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본래 선물이란 ①상대가 가장 애달플 때 ②최대한 비싼 값으로 ③밑지는 척 내밀어야 효과 만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