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트레커스
7월 내내 무더위가 지속 중이다. 이럴 땐 밤에 걷는 게 좋다. 더위를 피할 수 있고, 늘 걷던 길도 밤이 되면 색다른 길로 다가온다. 여름 달빛 걷기 세 번째는 전북 임실군 섬진강 상류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생가에서 강물을 따라 천담·구담 마을로 가는 길이다. 음력 초하루 날의 밤, 달이 없는 대신 별이 쏟아졌다.
글 싣는 순서
① 인왕산·수락산·남한산성 달빛 걷기
② 문경~괴산, 백두대간 새재 夜行
③ 임실 진메~어치 섬진강 밤 마실
“인생에는 길이 없습니다. 누구나 다 길이 없는 산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누구의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저 깊고 험한 산속으로 걸어갈 길은 자기가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시밭길과 절벽, 아득한 낭떠러지, 캄캄한 동굴을 뚫고 나갈 길을 낼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어떤 날은 희미한 오솔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디만큼 가면 탄탄대로를 걸을 때도 있을 겁니다.”

지난 25일, 임실 덕치면 장암리 진메마을에서 김용택(78) 시인을 만났다. 여름밤 섬진강 변을 같이 걷자고 할 요량이었다. 그는 “나는 이제 다리가 아파서 많이는 못 걸어” 하면서 그 날짜로 발행된 책 한 권을 건넸다. 위 문장은 스스로 “김용택의 글쓰기 자서전”이라고 말하는 『삶은 당신의 문장을 닮아간다』의 책의 서문 일부다. 그가 “아침에 머리를 안 감아 얼른 감고 오겠다”며 방으로 들어간 사이 위 문장을 반복해 읽었다. 책을 펼치지 않고도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훌륭한 서문이다. 매주 한 개 이상, 한사람 이상과 길을 걷고 있는 기자에겐 ‘나는 왜 걷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되새기게 하는 문장이었다.
책을 보면서 ‘여름 달빛 걷기’로 섬진강 길을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서울에서 임실로 차를 끌고 내려오는 내내 ‘역대 최고의 무더위에, 서울에서 서너 시간 떨어진 임실까지 와서, 게다가 밤길을 걸어보라’고 하는 게 맞는지 적이 걱정됐다. 그런데 시인의 일상과 섬진강의 풍광이 그려지는 책 한권을 받고 나니 ‘그만한 수고를 하더라도 걸어볼 만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국에 산과 강을 낀 길은 많지만, 진메마을만큼 정서적 풍요와 안정을 주는 곳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