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신고, 멋스럽게 걷자…스타일의 한 끗 결정짓는 발끝

2025-08-02

고대 이집트에서 내려온 조리

슬라이드는 발 쓱 넣어 편하게

‘가장 중성적인’ 피셔맨 샌들

통굽 플랫폼 샌들은 Y2K 느낌

나만의 ‘여름 룩’ 완성해보자

앞으로 얼마나 더워질지 가늠할 수 없는 여름의 한복판이다. 언젠가 매체에서 들었던 “이번 여름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며, 올해도 물론이거니와 해마다 반복될 여름을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 앞선다.

무엇을 신어도 덥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 계절에는 ‘시원한 신발을 고른다’는 말이 단순히 샌들을 선택한다는 뜻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여름 옷차림에서 발끝은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 아무래도 최소한의 아이템으로 꾸미게 되는 계절이다 보니, 신발은 스타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마무리이자 결정적인 포인트가 된다.

‘여름엔 샌들, 겨울엔 부츠’라는 공식은 패션계에서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여름에 부츠나 워커를 신고, 겨울에 두툼한 양말에 샌들을 신는 방식은 수년 전부터 유행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샌들과 양말’의 조합은 더 이상 촌스러운 아저씨들을 향한 놀림거리가 아니라, 완전히 정착된 패션 룰이 되었다.

어떤 샌들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해줄지, 내 아웃핏과 얼마나 잘 어울릴지를 고민하는 그 과정 자체가 샌들을 신는 즐거움이자, 패션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어떤 이에게 샌들은 와이드팬츠나 롱스커트 아래 조용히 드러나는 절제된 취향일 수 있다. 또 다른 이에게는 다채로운 색감의 소재와 발등, 발목을 장식한 화려한 디테일로 여름의 유쾌함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샌들의 스타일은 A부터 Z까지 다양해 한 편의 칼럼으로는 모두 담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는 편안하고 캐주얼하면서도 세련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굽이 없는 ‘플랫 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슬라이드’는 발목에 버클이나 끈이 없어 발을 쓱 밀어 넣는 형태의 슬리퍼형 샌들이다. ‘버켄스탁(Birkenstock)’ ‘하바이아나스(Havaianas)’ 같은 브랜드를 떠올리면 된다. 둘 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지만, 태생과 철학, 소재, 기능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버켄스탁’은 1774년 독일, 한 사람이 신발 한 켤레를 평생 신다가 물려주기도 했던 시절 소박한 시골 장인이었던 버켄스탁 형제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기능적이고 견고한 헤리티지를 이어받아 착화감이 매우 뛰어나며, 밑창은 코르크를 사용해 발의 아치를 안정적으로 지지하고 땀 흡수 기능까지 갖춘 것이 장점이다. 발등을 덮는 소재도 스웨이드, 누벅, 에바(EVA) 등으로 다양하며 시즌마다 색다른 소재 조합이 신선한 브랜드이다. 소재에 따른 가격 차이도 있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하바이아나스’는 ‘하와이 사람들’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로, 1962년 브라질에서 시작된 브랜드다. 일본의 전통 샌들인 초리(草履)에서 착안해 고무 소재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초창기부터 휴양지, 여름, 해변의 이미지를 내포하는 브랜딩으로 전 세계인의 여름 ‘필수템’으로 자리 잡았다. 소재는 100% 고무로 제작되어 내구성이 뛰어나고, 합리적인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색상이 다양하며, 브라질 특유의 다채로운 감성이 녹아든 컬러풀한 패턴 역시 많다. 최근에는 재활용 가능성을 강조하며 친환경 브랜드로도 어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조리’라고 불리는 플립플롭 스타일은 그 유래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립플롭(flip-flop)’이라는 말은 신발을 신고 걸을 때 발과 신발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에서 유래한 단어다.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 벽화에서도 오늘날의 플립플롭과 유사한 형태의 샌들이 발견되었고, 고대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일본, 인도 등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등장했다. 모두 발가락 사이에 끈을 끼워 신는 방식으로 더운 지역에서 통풍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에는 이만한 디자인이 없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스타일은 대중적인 샌들로 여겨지지만, 하이패션에서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고급 가죽 소재에 섬세한 스티치와 최소한의 절개로 마무리하거나, 고무 소재를 활용해 색다른 핏감을 제시함으로써 ‘미니멀 럭셔리’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더 로우(The Row)’ ‘토템(Toteme)’ ‘질 샌더(Jil Sander)’ 등이 있다.

샌들 중 가장 중성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스타일은 ‘피셔맨 샌들(Fisherman Sandals)’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부들이 신던 실용적인 신발에서 유래하였다. 물가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에게는 보호 기능이 있으면서도 물에 젖어도 금방 마를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했다. 피셔맨 샌들은 발등을 가죽 밴드로 교차해 감싸고, 구멍 사이로 공기와 물이 잘 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버클이 달린 스트랩으로 발목을 고정해 안정감도 준다. 예전에는 기능 위주의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인식되었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레트로 유행과 함께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하이패션 브랜드에서도 피셔맨 샌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스타일 아이템으로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셀린느(Celine)’ ‘마르니(Marni)’ 등에서 대표적인 피셔맨 스타일의 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요즘 검색 순위 상위권에 오르는 샌들 중 하나는 바로 ‘플랫폼 샌들’이다. ‘플랫폼(platform)’은 두꺼운 굽을 의미하며, 자연스럽게 키가 커 보일 뿐만 아니라 Y2K 감성과도 잘 어울려 현재의 트렌드와 맞아떨어진다. 예전처럼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플랫폼 샌들이 아니라, 최근에는 새로운 소재를 사용해 훨씬 가볍고 편안하게 제작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에바라는 소재는 가볍고 방수되는 고무 느낌의 폼 소재다. 전체가 에바로 몰딩되어 매우 가볍고 부드러우며 말랑한 것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장시간 신어도 피로감이 적어 요즘 주목받고 있으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에바 샌들’을 검색하면 수백 가지 디자인이 쏟아진다. 물에 강해 수영장에서나 비 오는 날 신는 용도로 시작되었지만, 최근에는 실내용 슬리퍼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쿠션감이 좋아 하루 종일 서 있거나 많이 걷는 사람이라면 취향에 맞춰 에바 샌들 하나쯤 마련해두는 것도 좋다. 몰딩 타입이라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컬러 선택의 폭이 넓어 실용성과 스타일을 모두 만족시킨다.

패션의 흐름은 이제 ‘화려함’에서 ‘편안함’으로 옮겨가고 있다. 예전에는 유행이라면 다소 불편해도 감수했고, 무리해서라도 럭셔리함을 드러내려 했다. 무엇이든 과하게 소비하던 시절은 이제 먼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런 변화 속에서 나를 표현하는 스타일에 집중하는, 현명한 소비가 더욱 중요해졌다.

그중에서도 작은 아이템 하나로 전체 룩의 인상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신발’이다. 무더운 여름이라고 해서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선택에 고민이 있다면, 앞서 소개한 샌들 스타일 중 하나를 골라보자. 기원전부터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져온 만큼 유행에 뒤처질 걱정 없이 믿고 신을 수 있을 것이다.

■박민지

패션 디자이너.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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