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마구’ 의미 담긴 이름 막국수
메밀 찬 성질 지녀 여름 음식으로 제격
영서·영동·춘천…지역별로 다른 풍미
시원한 면발의 계절이 돌아왔다. 쫄깃하고 새콤한 냉면도 좋지만, 투박하고 구수한 막국수도 냉면 못지않은 여름 별미다. 살얼음 언 동치미 육수에 ‘후루룩’ 입안 가득 물고 맛보는 막국수 한 사발이면 잃었던 입맛이 단숨에 되살아난다.
냉면과 뭐가 다를까?

막국수는 메밀국수에 동치미 육수나 양념장 등을 넣고 비벼 먹는 면 요리다. 한식문화사전에서는 막국수를 ‘메밀로 만든 국수에 김칫국을 붓고 그 위에 김치, 오이, 양념 등을 얹어서 먹는 강원도 지역의 향토음식’이라고 설명한다. 막국수의 ‘막’은 ‘금방’ ‘바로’의 의미가 담겨 있다. 메밀면은 글루텐 성분이 없어 끈기가 부족한데, 여기에 국수를 말아놓으면 금방 불어버리기 때문에 만들자마자 먹어야 했다. 특별한 조리법이나 고명, 육수를 엄격하게 따지지 않고 ‘막’ 만들어 바로 먹는 국수라는 뜻도 담겨 있다.
막국수는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나며 동치미 육수, 김칫국, 고기육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들기름막국수 등 종류도 다양한 편이다. 본래 늦가을에 메밀을 수확한 후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무렵 제빙기가 보급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여름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성질이 차가운 메밀은 열을 내려주는 효과도 있어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에도 좋다.
막국수와 냉면 또한 메밀국수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막국수는 메밀이 잘 자라는 고원지대 강원도에서 화전민과 농민들이 주로 먹었다. 메밀 함량이 높아 면발이 잘 끊어지며 메밀을 껍질째 갈아 면 색깔이 거무스름한 것이 특징. 반면 냉면은 북한 지역(평양·함흥)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메밀에 감자전분이나 고구마전분이 섞여 있어 면이 쫄깃하고 탄력이 있다. 전통적으로는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먹는 고급 음식으로 여겨졌다. 같은 메밀국수지만 메밀에 밀가루를 섞는 일본의 소바와도 다르다.
한때 ‘냉면은 양반 음식, 막국수는 서민(빈민) 음식’으로 불리기도 했다. 냉면이 정성스럽게 소고기 육수를 내고 고급스러운 고명을 얹는 것과 달리, 막국수는 있는 재료를 아낌없이 담아 가족, 이웃과 나눠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농한기나 제사 후 남은 메밀로 국수를 뽑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것이 그 시작이다. 처음에는 국수를 삶은 후 김칫국이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 간단한 형태였지만, 점차 육수와 고명, 양념이 더해지며 발전해왔다. 강원도 척박한 토양에서 태어난 음식답게 투박하면서도 공동체의 정이 담겨 있는 것 또한 막국수의 맛이다.

시원한 막국수가 생각나 강원도를 찾았다가 평소에 알던 막국수 맛과 달라 당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막국수는 강원도 전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지역에 따라 면의 질감과 육수, 양념 방식, 고명 등에서 각기 다른 스타일과 풍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저 춘천·원주·홍천 등을 포함한 영서 지역의 막국수는 투박하고 담백하며 메밀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메밀 함량이 높아 면이 쉽게 끊기지만 그만큼 거칠고 투박한 식감이 매력이다. 육수는 동치미 육수나 맑은 고기 육수를 사용하고 여기에 간장양념과 겨자, 식초 등을 더해 간을 한다. 양념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면 자체의 맛을 음미하기에 좋다. 고명도 삶은 달걀, 오이채, 무김치 정도로 단출하다.
영동지방, 특히 속초·양양·평창 일대의 막국수는 동치미 국물의 비율이 높아 한 입만 먹어도 시원함이 확 퍼진다. 여기에 들기름을 넣어 고소함을 더하거나 매콤새콤한 고추장 양념으로 입맛을 잡아끈다. 면은 영서지방에 비해 메밀 비율이 낮아 조금 더 쫄깃하고 탄력이 있는 편. 주로 면과 국물, 양념장이 따로 나와 먹는 사람 입맛에 맞춰 먹는다. 고명으로는 열무김치, 양배추 등 다양한 채소들이 들어간다.
춘천식 막국수는 영서식에 속하지만 춘천만의 스타일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체로 비빔 스타일이 많은데 새콤달콤한 양념장에 들기름이 들어가 고소한 풍미를 더한다. 면은 메밀의 향을 살리되 먹기 좋게 적당히 찰기를 갖추고 있으며 육수는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나온다. 육수는 동치미 국물이나 멸칫국물 등을 사용한 깔끔한 맛이 대부분이다. ‘비빔+육수’의 조합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스타일로 가장 대중화된 맛이라 할 수 있다.

올여름 강원도 여행을 계획했다면 막국수 맛집에 들러보자. 속초 ‘이목리막국수’는 여행객뿐 아니라 지역민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은 막국숫집이다. 과하지 않게 새콤달콤한 동치미 막국수와 명태회 비빔막국수가 대표메뉴. 동해안 막국숫집들은 해안가 특징을 살려 명태 식해를 고명으로 올린 회 막국수를 많이 낸다. 감자를 갈아 만든 감자전도 곁들이기 좋다.

양양의 ‘실로암메밀국수’는 100% 발효 동치미로 만든 동치미메밀국수와 고추장 양념과 들기름향이 조화로운 비빔메밀국수가 유명하다. 자체 방앗간에서 메밀과 양념류를 당일 준비해 사용하는데 구수하고 거친 메밀의 풍미와 매콤한 감칠맛이 입맛을 당긴다. 잡내 없이 부드러운 보쌈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강릉 ‘삼교리동치미막국수’는 이름처럼 동치미 육수가 주인공이다. 단단한 가을무에 배추, 양파, 파 등을 넣은 동치미를 영하 2도 저장고에 보관했다가 사용하는데, 시원하면서도 미묘한 단맛이 일품이다. 1976년 시작해 현재는 전국에 40여개 분점을 운영 중이다.

춘천에서 3대째 막국숫집을 운영 중인 ‘춘천샘밭막국수’도 빼놓을 수 없다. 메밀과 감자전분을 8 대 2 정도로 섞어 면발에 쫄깃하고 찰기를 더한 것이 특징. 참기름을 뿌린 막국수 위에 매운 양념과 김 부스러기, 참깨가루를 올리고, 사골과 동치미를 섞은 육수를 부으면 시원한 맛이 살아난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맛. 서울 서초동 분점에서도 맛볼 수 있다.

‘성천막국수’는 서울에서 강원도식 정통 막국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별다른 고명 없이 나오는 물막국수는 두툼한 메밀면과 개운한 동치미 국물로 승부를 본다. 비법 양념장을 올린 비빔막국수도 감칠맛 넘치는 여름 별미. 살짝 소금 간이 밴 돼지 수육이나 푸짐한 제육을 곁들여 먹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