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사고를 계기로 리튬 배터리의 기내 반입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리튬 배터리로 인한 폭발 사고가 꾸준히 늘고 있고 승객 우려도 커진 만큼 정부도 규정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있는 규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노트북·보조배터리·전동칫솔 등 다양한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리튬 배터리를 전면 금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부는 일단 리튬 배터리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8일 김해공항에서 발생한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리튬 배터리 기내 반입 규정 강화를 검토 중이라고 2일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4월 발표 예정인 항공 안전 혁신 대책에 관련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며 “먼저 시행할 수 있는 단기 조치가 있는지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리튬 배터리는 유엔이 설립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항공 위험물’로 분류한 물질로, 엄격한 운송 규제를 적용받는다. 적은 무게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높아 경량화가 용이하지만, 온도나 주변 환경에 따라 폭발이나 변형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2010년 UPS 항공 006편, 2011년 아시아나항공 991편 추락 사고도 화물칸에 실린 리튬 이온 배터리 발화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2016년 리튬 배터리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ICAO의 강화된 운송기준을 반영해 여객기 화물칸에 리튬 배터리를 단독 운송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화물 전용기로 리튬 배터리를 운송할 경우에는 충전율을 30% 이하로 제한했다. 사실상 기내 반입을 권장한 것이다. 승객이나 승무원 손이 닿기 쉬운 위치에 두어 화재에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 경우에도 제한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 항공사들의 협회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위험물 규정(DGR)’에 따르면 기내에 반입되는 모든 보조배터리는 유엔의 심사 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배터리 단자에 절연 테이프를 붙이는 등의 방식으로 단락(과전류가 흐르는 등의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 100와트시(Wh) 이하 리튬이온배터리나 리튬함량이 2g보다 낮은 리튬메탈배터리는 인당 최대 20개까지, 100~160Wh 배터리는 최대 2개까지만 휴대가 가능하다. 대부분의 국적 항공사는 이러한 규정을 준용해 자율적으로 리튬 배터리 기내 수화물 반입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승객들이 소지한 리튬 배터리가 UN 기준을 충족한 것인지에 대한 탑승 전 검사는 따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최근 인증 여부가 불투명한 저가형 보조 배터리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관련 사고도 늘고 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2006년부터 지난 16일까지 리튬 배터리로 인해 발생한 항공편 사고 총 587건 중 230건이 충전식 배터리에서 발생했다는 조사결과를 최근 내기도 했다.
정부는 규정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기내에 반입하는 리튬 배터리 인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는 전례는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리튬 배터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상황에서 항공사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장박동기, 보청기 등 의료 목적의 배터리를 기내에 반드시 반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전면 금지도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보조배터리 반입 자체를 금지하기보다는, 초기 화재 진압이 용이하도록 눈에 보이는 곳에 두도록 하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내 방송이나 체크인 카운터에서의 안내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