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승무원의 코와 입, 얼굴이 그을음으로 새카맸습니다. 탈진한 듯 보였지만 아무도 진료나 처치는 받지 않고 승객들을 살폈어요.” 지난 28일 발생한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때 비행기에 탔던 40대 여성 A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들은 우리가 응급 처치와 안내를 받고 돌아갈 때야 주저앉아 혈압을 잴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분투한 승무원, 비방 안타깝다”
사고가 난 지난 28일 A씨 가족 10여명은 김해국제공항을 떠나 홍콩으로 향하는 에어부산 BX 391편에 올랐다. 좌석 위치는 기내 가운데 쪽이었다. 오후 10시5분쯤 “20분가량 비행기가 지연된다”는 안내 방송을 들은 A씨는 실내등이 꺼진 기내에서 자리에 앉은 승무원을 응시했다.
그는 “5, 6분쯤 지났을 때 크게 놀란 승무원 얼굴을 봤다”고 했다. A씨 가족과 가까운 좌석의 머리 위 짐칸에선 불꽃과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승무원이 “혹시 짐칸에 보조배터리를 넣은 사람이 있느냐”며 상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기장실로 연결되는 수화기를 들었다는 게 A씨 기억이다. 황망함 속에 막연히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짐칸) 문을 열면 다칠 수 있다”는 승무원 외침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고 한다. 그는 “소화기를 든 승무원이 짐칸 문을 열었지만 불길이 크게 번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기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승객 169명이 탈출하기 위해 3곳의 슬라이드로 몰렸다. A씨는 “고성 속에 승객이 서로 밀치거나 넘어지고 엉키며 혼란이 컸다”며 “이때 외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고함도 지르지 않고 차분했다. 덕분에 침착을 찾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A씨는 거의 마지막으로 기내를 빠져나왔다고 한다.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승무원 안내에 따라 버스에 올라 현장을 벗어났다.
당시를 회상하며 A씨는 “돌발상황에 승무원들이 분투했고, 덕분에 크게 다친 사람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6명의 승무원이 160명 넘는 승객을 맨투맨으로 안내하긴 어렵다. 사후적으로 잘잘못을 따져 승무원들을 지나치게 비방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처 미흡’ 논란에 에어부산 해명
실제로 승무원 대처가 미흡했다는 승객 목소리도 있다. 당시 친구와 함께 여행하려고 이 비행기에 탔던 30대 남성 B씨는 통화에서 “초기에 일부 승무원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설명이나 대피 관련 안내 방송도 없어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항공기 문을 열어 달라는 승객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승객이 직접 문을 여는 등 상황 통제가 미흡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에어부산 측은 “별도 안내 방송을 할 시간적 여력 없이 동시 다발적으로 긴박하게 이뤄진 상황으로, 짧은 시간 내에 관련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조치해 탈출업무를 수행했다”며 “사전에 비상구 개폐 방법을 안내받은 탑승객이 승무원 요청에 따라 비상구를 연 것으로 파악된다”고 해명했다.
항공유 16톤, 폭발 없이 진압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화재 신고는 이날 오후 10시26분쯤 이뤄졌다. 승객이 대피를 마치고 3분이 지난 오후 10시35분쯤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항공기 양 날개엔 3만5000파운드(16톤)의 항공유가 실렸고, 초속 10m의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대응 1단계를 발령한 소방당국은 탱크차와 펌프 등 68대의 장비를 동원해 불이 날개 쪽으로 번지는 걸 저지하는 데 집중하며 집중 살수했고,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도 화재 진압에 가세했다. 불은 오후 11시31분 완전히 꺼졌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등 7명이 다쳤다. 소방 당국은 비행 지연에 따라 여객기가 지상에 있는 상황에서 불이 나 빠른 대피가 가능했던 것으로 본다. 사고 후 에어부산이 작성한 보고서 등에 따르면 선반 짐칸에 놓인 보조 배터리 탓에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최상목 권한대행이 “철저한 원인 조사와 신속한 후속 조치”를 지시한 가운데 부산시도 “사고 수습에 총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