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 속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각종 반(反) 재계법이 효력 발효를 앞두고 있다. 이중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국가 기간산업의 영업비밀을 국회가 들여다 볼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다수 포함돼 논란이 일 전망이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11월 28일 열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두고 기업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법은 국회로부터 서류 제출 및 증인 출석 등 요구를 받았을 때 기업이나 개인이 개인정보보호 또는 영업비밀보호 등의 이유로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령 국회가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공정에 들어가는 화학약품이나 장비 이름을 달라”고 요구해도 원칙적으로 기엽이 이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김용민, 박주민 의원 발의안 등이 포함된 대안법안으로 21일까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이대로 확정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도 국회의원들이 자료를 달라는 요청에 기업이 자기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법적 근거까지 마련되면 국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반도체처럼 기술 민감도가 높은 첨단산업 업계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자료를 빼다가 경쟁기업이나 국가에 갖다 주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때문에 재계에서는 최소한 국가첨단산업만이라도 자료 제출 거부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회가 대기업 총수들을 언제든지 불러내 ‘벌 세우기’를 할 수 있는 조항도 삽입됐다. 이 법에 따른 동행명령 대상을 기존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에서 중요한 안건심사 및 청문회까지 넓히고 증인이나 참고인이 질병·부상·해외 체류 등의 사유로 출석하기 어려울 경우 원격출석이라도 반드시 해야 하도록 법안이 개정됐다. 만약 서류 제출을 거부·방해하거나 정보를 허위로 제공하는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처벌 규정도 신설됐다.
재계는 사실상 1년 내내 국회가 기업인을 불러낼 수 있는 조항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의 대관 담당 임원은 “국정감사 때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일단 총수를 불러오라고 요구한 뒤 이것을 빌미로 ‘갑질’을 자행하고 있다”며 “지금은 그나마 1년에 한 번이지만 365일 상시화되면 정상적인 기업 경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수나 최고경영자(CEO)의 해외 출장까지도 국회의 눈치를 봐야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이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아 상법 개정을 밀어부칠 수 있다는 점도 재계의 고민거리다. 상법이 야당안대로 개정되면 경영진들이 정상적인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감사위원회도 투기 자본에 장악당할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국내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경제단체 1곳이 해체 위기에까지 몰린 트라우마가 있어 어느 곳도 민주당과 국회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