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 이대로 좋은가... 학계 "기업 적극적 경영 위축 우려"

2024-12-12

한국경영인학회, '상법개정안' 긴급현안 심포지엄 개최

"상법개정안, 부작용 가능성.. 신중히 접근해야" 중론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 대주주 권한 약화

외부 세력의 경영간섭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 높아

민주당 등 야권이 당론으로 ‘상법개정안’의 연내 통과를 추진하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학계에서도 해당 개정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업의 적극적인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주주에 의한 이사의 충실의무 ▲집중투표제 의무화 ▲독립이사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대상 확대 등의 내용을 비판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선 ‘정치논리’ 대신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한국경영인학회는 대신경제연구소 공동주관으로 11일 대신파이낸스센터에서 ‘상법개정안, 이대로 좋은가’ 긴급현안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는 한석훈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장과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연단에 섰다.

먼저, 한 위원장은 ‘상법개정안 분석 및 제언: 기업밸류업을 위한 효과적 방안 검토’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상법개정안 중 핵심 규정이 모호하거나 모순되는 문제를 안고 있어, 기업경영 현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봤다. 이는 적극적인 경영을 위축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다.

대표적으로는 상법 개정안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가 지적됐다. 이사의 의무를 규정하는 해당 조항에서 1항은 ‘회사 및 주주를 위한 직무수행’을 규정하면서도, 2항에선 ‘총주주의 이익·전체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을 부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대주주의 이익과 소수주주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게 보편적 개념”이라며 “그런데도 개정안은 ‘총주주의 이익’이라는 불명확한 개념이 담겨 있어, 규정을 오해한 개별주주들이 빈번하게 소송을 제기할 우려를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주는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기업가주주, 투자자주주 등 각각의 이해관계가 상이한데, 이를 ‘총주주’로 묶는 것은 보호의무의 내용을 불명확하게 만들고 분쟁을 야기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한 위원장은 상법개정안이 경영인에 대한 배임죄의 적용을 과도하게 확대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현행 업무상배임죄는 고의적 임무위배 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가했을 때 성립되지만, 개정안은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고 있다”며 “이 경우, 경영실패의 대부분이 특경법 위반에 해당하게 돼 적극적 경영과 기술 혁신의 장애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권재열 교수는 ‘법체계적 측면에서 바라본 지배구조 규제법안’을 주제로 학술적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상법개정안이 상장회사에 대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은 담은 것에 대해선 비판적 견해로 접근했다. 집중투표제는 상장회사가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시, 의결권 있는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투표방식이다.

권 교수는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의 발언권과 이사회의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으나, 다수결의 원칙에 반하고 이사회의 고유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각 주주가 의결권을 어느정도로 분산, 집중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고,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개정안에서 독립이사제 도입 및 감사위원 분리선임 대상 확대 규정을 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를 내비쳤다. 독립이사는 ‘사외이사’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현행법은 이사 총수의 4분의 1을 사외이사로 선임토록 하고 있으나, 개정안에서는 3분의 1로 수를 늘렸다.

권 교수는 “우리 상법은 사외이사의 독립성만을 강조하다 보니, 전문성을 경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9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는 한국의 상법 시행령에서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한 것이 사외이사 전문성을 저해한다며 금융위원장에게 재검토를 요청한 바 있다”고 부연설명했다.

아울러 권 교수는 상법 개정안이 대규모 상장회사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임 대상을 기존 1인에서 2인으로 확대한 것에 대해 “투기적 기관투자자 및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간섭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상법에는 주요 주주의 의결권을 발행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이른바 ‘3%룰’이 존재한다. 그런데 국내 기관투자자와 외국계 펀드 등이 3%룰을 이용해 자기측 인사를 감사위원회에 임명할 경우,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상법 개정안은 금융회사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상장회사에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금융산업의 경우에는 수익구조의 특성으로 인해 규제의 정당성을 얻고 있지만, 이를 사기업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안태준 한양대 법대 교수를 좌장으로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센터장,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강원 세종대 경영대학 교수, 권용수 건국대 KU글로컬혁신대학 교수, 최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등이 자리했다.

최수정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의 99.9%가 중소기업인 만큼 상법 개정으로 영향이 중소기업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게 ‘자율성’과 ‘혁신’은 생존에 필수적이므로 차등화된 규제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권용수 교수는 이사회 충실의무 개정안이 현행법 체계와 모순되고 이사의 소극적 경영을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특히 일부 주주들이 개정안을 오독하여 손해 발생 시 결과 책임을 추궁하는 수단으로 남용할 가능성을 염려했다.

강원 교수는 소유경영체제와 전문경영체제 모두 장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상법 개정의 기저에는 소유경영체제를 전면 부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중 전문경영체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리인 문제를 야당 측에서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신현한 교수는 ”회사 목적은 주주 부의 극대화“라며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번 상법 개정은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주식회사 재무관리의 원칙과 본질을 해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기업이 실패하면 온전히 그 책임을 지는 건 경영권을 쥐고 있는 대주주”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대주주보다 소액주주의 권리가 더 크다고 한다면, 대주주는 책임은 지되 그에 상응하는 권리는 없는 것으로 과연 누가 책임 있는 경영을 하려 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토론 패널자로 나선 안상희 센터장은 법 개정 이외 대안으로 공시 기준 강화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배구조 체계가 글로벌 트렌드와 무관하게 갈 수는 없으나, 현실적으로 대기업집단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 상황에 맞춘 밸류업 제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안 센터장은 “소유구조의 형태가 상이한 기업의 거버넌스 관련 감독체계를 법률로만 하는 것보다는 자본시장에서 투자자의 시장감시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공시강화를 통해 구축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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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표 기자 yukp@meconomynews.com

원칙이 곧 지름길. 금융 보험·카드업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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