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혼돈의 시대, 어떻게 대비하여야 하나

2025-03-14

바야흐로 대(大)혼돈의 시대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많이 겪고 있으며,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수십 년 동안 시행되지 않던 정책들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매 학기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대한민국 경제가 지난 반세기 동안 어떻게 성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굴곡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왜 경제학을 배우는지를 설명한다. 십여 년 전에 일어난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야기하면 지금의 대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지난 세기 말미에 있었던, 이제 거의 30주년이 다 되어가는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이야기할 때는 전혀 감이 안 오는 표정이다. 당연하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필자가 당시에 어른들에게서 6·25전쟁의 경험을 듣는 정도의 시차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역할 커져

지난해 미 대선으로 경제정책 전환

관세전쟁이 글로벌 침체 불러올듯

향후 미 환율 정책에도 대비해야

외환위기가 그럴진대 이보다도 거의 20년 전인 70년대 말에 있었던 제2차 유가파동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격변이 어떻게 경기의 변동을 가져왔는지는 정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로 들리곤 하였다. 그런데, 지난 12월 이후에 기성세대가 벌인 일련의 정치적 사건과 이에 따른 경제적 파장은 학생들에게 사오십년 전에 일어났던 경기변동을 설명하기 쉽게 만들었다. 혼돈의 크기를 짐작게 하는 슬픈 현실이라고 하겠다.

국제정치의 혼란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21세기의 첫 사반세기가 세계사에서는 어떤 의미로 기록될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하나의 분기점으로 본다면 그 이후의 80년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많은 나라가 세계대전을 극복하고 이후에는 이와 같은 불행을 반복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데에는 크게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좋든 싫든 미국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 역할을 세계의 경찰 혹은 정원사라고 표현하곤 했다.

이러한 정원사의 역할이 국제경제에서는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국제결제에 미국 달러를 사용하기로 한 결정과 관련이 깊다. 가장 유서 깊은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도 이때 설립되었다. 경찰이나 정원사는 세상을 통제하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권한은 스스로의 시간과 자원을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에 기반을 둔다. 권한에 대한 자부심보다 희생에 따른 고통이 더 클 때는 누구나 그 권한과 희생을 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2024년이 선거의 해였다고 했는데 그 클라이맥스는 미국 대선이었다. 미국의 국민은 세계 경찰로서의 자부심보다는 정원사로서의 희생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민주주의 선거제도라는 의사표현을 통하여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선택은 지난 80년간 인류가 따라온 움직임과는 약간 (혹은 그 이상) 다른 움직임이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선택을 상대가격에 반응하고 이러한 반응이 상대가격을 변동시키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분석한다. 소비자로서의 개인이나 수많은 생산자 중의 하나로서의 기업은 상대가격에 반응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변동시키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대가격을 변동시키는 권한은 (국민이 위임한) 국가기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권한을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 또는 금융정책의 영역으로 부른다.

국가기관이 한 나라의 내부에서 상대가격을 바꾸는 것도 물론 힘든 일이다. 세금을 누가 내느냐와 연금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의 정답은 항상 없다. 통화정책과 금융정책의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거버넌스가 상대적으로 잘 되어있는 국가 내 정책에서도 이러할진대 국가 간 정책의 문제에서 상대가격을 바꾸는 것은 훨씬 더 힘든 일이다. 국내 거버넌스에서 서로 간의 신뢰가 필수적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최근 사법의 신뢰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알려주는 현실이다.

한 국가 안에서의 신뢰가 이렇게 어려우면 국가 간 신뢰, 혹은 국민 간 신뢰를 찾는 것은 어쩌면 연목구어(緣木求魚)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는 흘러가고 있는 신뢰를 가지고 각 국가는 경제정책을 수행한다. 국가 간 상대가격을 변동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관세이다. 세계대전 이후 지난 80년간 관세는 점차 낮아져 왔으나 이제는 그 반대의 방향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이다. 미국 대선 당시였던 11월에 예상하였던 정책을 기준점으로 놓고 볼 때, 그보다 더 강하게 진행되는 미국의 관세정책은 세계경제를 그리고 한국의 성장률을 내년에 0.4%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한국은행은 분석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의 성장률은 0.8%포인트 낮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는 미국의 행정부가 의도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정책에서는 항상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성장률이 낮아지고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이를 국가 간 상대가격의 미시적 변경수단이 관세가 아니라 거시적 변경수단인 환율의 조정을 통해서 조정하려는 시도가 나올 위험이 충분히 도사리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는 외환당국과 통화당국뿐 아니라 모두가 아무리 많이 걱정하여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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