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 공격적 재테크
거래규모 큰 헤비 트레이더
8개월만에 10배 늘어나
韓증시·부동산 주춤한데다
배우자 증여땐 절세효과도
국내 증시가 부진한 가운데서도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 열풍이 이어지면서 거래 대금이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큰손 여성 개인투자자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은 대출 규제와 고금리, 탄핵 정국 등으로 삼중고를 겪고 한국 주식 시장은 부진의 늪에 빠진 반면, 미국 증시만큼은 강세장을 이어 가면서 이들의 매수세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25일 신한투자증권 집계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여성 고액 투자자 수는 올해 1분기 말인 지난 3월 말 대비 10배 불어났다. 남성 고액 투자자 수가 같은 기간 3.5배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이는 한 달 기준 약정 금액이 20억원 이상인 개인고객을 기준으로 집계한 수치다. 약정 금액이란 매수 금액과 매도 금액을 포함한 주식 총 매매 거래 대금을 말한다.
약정 금액 증가세도 여성이 두드러진다. 올해 9~11월 여성 고액 투자자들의 약정 금액은 지난 1~3월 대비 21배 늘어 총 7조327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남성은 4.7배 늘어난 9조9402억원이었다. 절대적인 금액만 보면 남성의 거래 대금 규모가 더 크지만 증가세는 여성이 압도적이다.
남성과 여성을 전부 합친 미국 주식 고액 투자자 수는 4.7배 늘었다. 이들의 약정 금액은 7배 늘어난 약 17조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특징은 전반적인 추세와도 맞물려 있다. 지난 2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23일까지 한국 투자자들의 올해 연중 미국 주식 매수 금액은 역대 최대치인 총 2515억3657만달러(약 367조170억원)로 작년 한 해보다 86% 급증했다.
고액 투자자 수를 연령대별로 보면 여성은 30대, 남성은 20대와 40대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여성 고액 투자자 수는 30대가 30배 가까이 늘어 가장 많이 불어났고 이어 20대(24배), 40대(13.6배), 50대(7.2배) 순이었다. 남성은 40대와 20대가 모두 6.1배 불어났고 이어 30대(3.4배), 50대(3배) 순이었다. 연령대별로 약정 금액을 보면 여성은 60대(1조7982억원)에 이어 40대(1조7489억원)가 많았다. 남성 역시 40대(2조2795억원)와 60대(2조2772억원)가 다른 연령대보다 미국 주식 투자 규모가 컸다.
이와 관련해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여성 고액 투자자가 급증한 것은 여성 고액 자산가들이 늘어난 데다 이들이 부동산이나 다른 자산에 비해 미국 주식에 주목하는 추세가 반영된 것"이라면서 "생애 주기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절세 목적의 배우자 증여가 화두로 떠올랐다. 증권가에서는 고액 투자와 관련해 배우자 증여 효과가 반영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외 주식을 배우자에게 증여한 뒤 매도하면 증여 시점 가격을 기준으로 양도소득세가 산정되기 때문에 증여 후 주가 변동이 크지 않다면 양도세를 아낄 수 있다.
고액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선호도를 자극한 것은 올해 국내 자산 시장이 부진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은 각종 규제와 고금리, 탄핵 정국 정책 불확실성 탓에 연말로 갈수록 매수심리가 주춤하고 주식 시장은 코스피가 24일 기준으로 연중 8.6% 하락하는 식으로 부진했다. 반면 미국 대표 주가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연중 27% 이상 뛴 상태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주식 시장 주가 상승 속도가 빠른 수준임에도 수급 구조는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고액 투자자들의 미국 투자 종목 선호도는 성별보다는 연령대에 따라 엇갈렸다.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고액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매수 상위 5개 종목을 보면 공통적으로 테슬라와 엔비디아, 애플이 포함됐다.
다만 20대부터 50대가 선호하는 상위 5위 내 종목을 보면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인 디렉시온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셰어스(SOXL)가 포함된 반면 60대 이상의 경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