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메달을 어떻게 땄냐? 보여줘. 멍청하게 엉뚱한 데 화풀이하지 말고.”
돈보다 명예가 중요한 복싱 금메달리스트 출신 특채 경찰 윤동주(박보검). 가는 곳마다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그는 짝사랑하는 지한나(김소현)의 이 말에 재대로 보여주겠다는 의욕을 불태운다.
지난 5월 31일 첫 방송한 JTBC ‘굿보이’의 1~2화 내용이다. 윤동주는 2018년 상파울루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도핑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2년간 명예를 지키기 위한 소송을 벌인 과거가 있다. 결국 금메달은 지켰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를 ‘도핑 선수’로 기억하는 상황. 위기 속에 경찰이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윤동주는 지한나에게 자신의 실력으로 딴 금메달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처럼 찬란한 성공기가 아닌, 불완전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잇따라 안방극장에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SBS ‘상속자들’(2013), 티빙 ‘피라미드 게임’(2024)의 주인공처럼 평균 이상의 스펙을 갖춘 ‘육각형 인간’이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 서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더 가지기 위해 애쓰기보다, 지금의 삶을 있는 힘껏 살아내려 애쓴다. 공희정 평론가는 “드라마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매체”라며 자연스럽게 시대의 변화와 맞닿은 청춘 주인공을 내세웠다고 봤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여정이 처절하거나 절망적인 건 아니다. 유머와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진다. 현실의 무게를 코믹하게 상쇄하는 요소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끈다. 최영균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의 짐을 짊어진 청춘들의 고단함만을 보여주면 자칫 극 분위기가 무겁게만 흐를 수 있다. 극중 독특한 캐릭터 설정, 흥미로운 배경 등은 공감을 얻고 웃음을 통해 한숨 돌릴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고 부연했다.
‘굿보이’에서는 ‘JUSTICE’(정의)가 새겨진 마우스피스를 물고 맨몸으로 범죄 조직에 뛰어드는 박보검 표 액션 연기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잽, 훅, 어퍼컷 등 복싱 공격 기술로 범인을 제압하는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피 끓는 청춘 윤동주를 표현했다. 경찰 동료인 사격 국가대표인 지한나, 펜싱 은메달리스트 김종현(이상이), ‘만두 귀’를 가진 레슬링 선수 출신 고만식(허성태), 원반던지기 선수 출신 신재홍(태원석)도 각자의 특기를 살린 액션을 펼친다. 시청률은 2회만에 5.3%(닐슨코리아, 전국)를 기록했고, 분당 최고 시청률은 수도권 기준 7.3%까지 치솟았다.

1화 3.6%로 시작해 입소문을 내며 5.9%(4화)까지 오른 tvN ‘미지의 서울’도 특별하지 않은 청춘들이 살아가는 내용이다. 고향 두손리에서 마을 일꾼으로 살던 쌍둥이 동생 유미지가 서울의 공기업에 취직한 유미래와 인생을 바꾸면서 이야기가 벌어진다. 배우 박보영이 1인 2역을 맡아 섬세한 내면연기를 보여준다. 온라인에서는 “미지인 척하는 미래, 미래인 척 하는 미지까지 1인 4역을 소화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극중 유미래는 사내 괴롭힘과 업무 스트레스로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고, 이를 알게 된 씩씩한 유미지는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겠다”며 언니 대신 출근한다. 그러나 막상 서울 생활에 뛰어든 유미지도 회사 내 갈등, 눈치, 관계의 피로 속에 지쳐간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언니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장신애 책임프로듀서(CP)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라며 “지극히 소소하지만 타인의 삶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은 나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가 내게도 큰 위로와 감동이 됐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5일 종영하는 KBS2 ‘24시 헬스클럽’은 로맨틱 코미디 위에 청춘 서사를 섞었다.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영범 역의 이준영이 헬스에 미친 관장 도현중으로 분해 굵직한 목소리로 구령을 외치는 코믹 캐릭터를 연기했다. 상대 배우인 정은지는 타고난 비만 체질로 어렸을 때부터 소심한 헬스장 회원 이미란을 맡았다. 보통 미디어에서 그린 헬스장은 자기관리를 잘 하는 성공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그려졌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자존감을 되찾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무대로 펼쳐져 눈길을 끈다.
그룹 유키스 출신에서 배우로 성공한 이준영은 “도현중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매개체가 운동이라면, 내겐 춤이 있었다. 춤을 추며 치유받고 위로받았던 내 감정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점, 어딘가 부족한 현중의 곁에 성장을 도와주는 인물들이 있다는 점에 이끌려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중앙일보에 밝혔다.

SBS ‘사계의 봄’은 K팝 최고 밴드그룹의 멤버 사계(하유준)가 하루아침에 팀에서 퇴출당하고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줄거리다. 극 설정 안에서 사계는 “내 인생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반전 영화다. 어린 나이에 초대박이 났다가 한순간에 곤두박질”이라며 “그래도 바닥을 치고 나니 그제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 인터뷰한다.
공 평론가는 이 드라마들이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소외되고 있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에 주목했다. “청춘들에게는 자존감 회복과 자기 발견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기성세대는 작품 속 어른들의 여러가지 모습을 통해 ‘젊은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어른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