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여름은 괜찮을까

2025-06-15

폭염의 계절 여름이 훌쩍 다가왔다. 이글거리는 햇살 아래 실외노동 못지않게 밀폐된 공간 속 실내노동도 힘들고 위험하다. 며칠 전 물류센터의 여름 폭염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쿠팡 물류센터는 겨울엔 춥기로, 여름엔 덥기로 악명 높다. 나는 쿠팡을 ‘로켓배송’ 광고를 처음 보았을 때의 섬찟함으로 기억한다. 배송은 사람이 하니 로켓배송은 사람보고 로켓이 되라는 말이다. 실제로 쿠팡은 노동자를 기계처럼 부렸고,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 쿠팡 노동자는 쓰러지기 시작했다. 2020년 이후 쿠팡에서 배송 기사, 물류센터 노동자, 조리사 등 20여명이 사망했다. 로켓배송의 연료로 소모된 셈이다. 사망 원인은 주로 과로사, 심혈관계 질환, 온열질환이다. 2022년 기준 쿠팡 산업재해율(5.92%)은 국내 산업재해율(0.65%)의 9배 이상이었고 산업재해에 취약하다는 조선업(2.61%)과 건설업(1.25%)보다도 훨씬 높았다.

지난해 9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폭염 대책 마련이 사업주의 의무사항이 됐다. 이에 따라 올해 초 ‘폭염 시 2시간당 20분 이상 휴식 시간 부여’ 조항이 들어간 산업안전보건규칙이 입법 예고됐지만, 규제개혁위원회가 이 조항을 걸어 개정을 막았다. 여름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물류센터에 충분한 휴식 시간과 냉방은 시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 목숨이 달린 문제다. 사람이야 죽든 말든 이윤을 최대한 늘리기에 바쁜 쿠팡 자본이 휴식 시간 의무 부여 조치를 달갑게 여길 리 없다. 이런 쿠팡 자본의 갑갑함을 해소해준 규제개혁위는 대통령 소속이 아니라 쿠팡 직속 같다. 어찌 보면 쿠팡은 자기 증식이라는 자본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자본이고 자본을 그냥 내버려두면 어떤 괴물로 변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쿠팡·태안화력…‘구조적인 죽음’

쿠팡 노동자의 죽음은 우발적이 아니라 구조적이다. 뜻밖의 죽음이 아니라 예견된 죽음이다. 마음만 먹으면 막을 수 있는, 그래서 방치하면 안 될 죽음은 쿠팡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충현 노동자가 사망했다. 2018년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바로 그 발전소다. 두 사람 모두 하청 노동자이고 혼자 일하다 죽었다. 김용균 사망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 개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판박이 죽음이 김충현을 덮쳤다. 그는 유능하고 성실했지만, 김용균처럼 ‘하청’이었다.

사고를 막으려고 법을 고치고 만드는데도 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법은 필요하지만, 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법을 우회해 반복되는 사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다. ‘더 많은 이윤’에 눈이 먼 자본은 비용 절감에 목을 맨다. 안전 조치는 곧 비용이니 형식에 그치기 일쑤다. 신분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필요한 안전 조치를 요구하긴 어렵다. 결국 안전한 노동은 비정규직 문제로 이어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노동 차별이 있는 한,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는 그치지 않고 반복된다. 하청이 거듭될수록 안전은 멀어지고 위험이 다가온다. 2019년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려면 다단계 하청 구조를 줄이고 고용 구조를 일원화하라고 권고했다. 권고는 실행되지 않았고 위험은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2025년 ‘또 다른 김용균’ 김충현이 일하다 죽었다. 이대로라면, 언제인지 모를 뿐, 다음번 김용균의 죽음도 예정된 일이다.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가.

자본을 감독해 노동자를 보호할 책무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에, 최종적으로 대통령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 물류센터 노동자와 만납시다.” 폭염을 앞둔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외쳤다. 또다시 동료를 잃은 발전 노동자들도 대통령과 만나자고 요청했다(대통령에 매달리는 것은 ‘민’이 통치하는 ‘민치정’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대의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18년 12월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바로 전날 밤 태안화력에서 일하다 사망한 김용균도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는 손팻말을 든 사진을 남겼다. 그 사진은 그의 영정이 됐고 문 대통령은 끝내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나지 않았다.

소년공 대통령, 비정규직 만나길

대통령 한번 만난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만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모두 함께 잘사는 나라’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우리나라 노동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막을 수 있는 위험에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만나야 한다. 소년공 출신이라는 이 대통령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나길,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여름도 괜찮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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