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 보며 전·노 떠올렸다

2024-09-24

올라갈 땐 찬란하나, 내려갈 땐 잔혹한 게 권력이다. 파국 이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이에 오간 서한에서도 드러난다.

1991년 청와대 본관 신축을 계기로 관계를 풀고 싶어 한 노 전 대통령에게 전 전 대통령은 이런 편지를 보냈다(『전두환 회고록 3』). 그는 “노 대통령과 나 사이의 자연스럽고 견고했던 우정도 결국 정치권력의 현실 앞에선 단 한 계절도 견디지 못한 채 무참하고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느꼈던 통한과 허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5공의 2인자였고 후임자였으며 5공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5공이 길러낸 5공의 인물이 바로 노태우”라며 “5공이 그토록 철저한 비리집단이고 무법적 집단이었다면 노 대통령이 어떻게 그 견딜 수 없는 비리와 무법을 참아내며 5공의 2인자 자리를 누리며 지낼 수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40년 우정도 파국 부르는 게 권력

1·2인자 갈등, 필연이나 관리해야

윤 대통령, 도전자 시절 떠올려야

바로 다음 날 노 전 대통령이 답신했다. “혁명을 방불케 하는 위험한 소용돌이 속에서 전임 대통령을 보호하는 길이 무엇인가에 나는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주위 친척이 저지른 일을 극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해 왔다. 전임 대통령과 주변을 보호하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중략) 무슨 보호할 일이 그렇게 많냐고 생각하겠지만 참으로 감당키 어려운 일이 많다. 전임 대통령이 방문하는 많은 자들에게 나를 욕하는 소리가 귀 따갑도록 듣고 있다. 이해하고 참으려 노력도 많이 했다. 이 세상 누구보다.”

‘바위 같은 40년 우정’으로 대통령직까지 다섯 자리를 이어받은 둘이다. 권위주의 시대를 마무리하는 6·29선언을 합작해낼 만큼(전 전 대통령은 이후 공을 노 전 대통령에게 몰아주는 대신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과 함께했더라면 자신이 그토록 철저하게 부정당했을까 궁금해했다), '성공적'인 2인3각이었지만 종국엔 갈라섰다. 권력은 그런 것이다.

이들을 떠올린 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심상치 않은 관계 때문이다. 의심하고 배신에 몸을 떠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공간을 부인당하고 인내해야 하는 이가 있다. 갈등은 필연이다. 그러나 둘이 갈등할 만한 일을 두고 갈등하는지는 진정으로 의문이다. 전·노는 권위주의 종식이란 시대사를 배경으로 깔고 있었다. 윤·한 두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했다고 이러나.

한 대표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가 옳은 지점에 서서 옳은 지적을 하는 건 알겠는데, 옳은 방식으로(배려심 있게)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언론 플레이한다”는 비판을 받곤 하는데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다만 그는 아직 완성된 정치인은 아니다. 이 시기가 정치적 단련기가 될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옹색한 건 윤 대통령이다. 균형적 판단, 즉 ‘내적 집중력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자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의 지속적 오작동이 두드러진다. 대통령의 감정 상태가 실시간 전달되는데, 현실 세계를 모른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대통령 탓이 큰데 남 탓하고, 대통령이 바뀌면 되는데 남이 바뀌길 요구하는 식이다.

누구도 보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조갑제 기자까지 ‘못 살겠다, 갈아보자’란 쇼츠를 올린 게 엊그제다. 윤 대통령은 이제 자신과 부인이 인기 없다는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 존중받기보단 조롱받고, 이해받기보단 곡해받을 조건 말이다. “다들 왜 배신하느냐”고 분개하기 전에, 2019년 9월 6일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독대해 조국 법무부 장관 인선에 대해 고언하던 때를 떠올려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의 불수용이 윤 대통령의 오늘을 있게 했다. 윤 대통령이 듣기 편한 소리만 듣고 안 변하려 한다면, 멀쩡한 사람들은 계속 떠나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전·노 두 사람에겐 대단한 면이 있긴 했다. 누군가는 통 크게 양보했고, 누군가는 2인자의 설움을 감내했다. 윤·한 둘에겐 없는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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